福山芳樹 - ざかりの

 

福山芳樹

作詞KYOKO FUKUYAMA

作曲YOSHIKI FUKUYAMA

 

-------------------------------------------

 

れてもう どんなにがたつだろう

키미토하나레테모오 돈나니토키가타츠다로오

너와 헤어지고 나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はいつしかざかり

마치와이츠시카하나자카리

거리는 어느덧 꽃이 한창

 

ももう 日差しにとけてゆく

우소모나미다모모오 하루노히자시니토케테유쿠

거짓말도 눈물도 이젠 봄의 햇빛으로 녹아가

 

さびしいして

사비시이후유노오모이데오노고코시테

쓸쓸한 겨울의 추억만을 남기고서

 

二度 えなくても

키미토니도토 아에나쿠테모

너와 두번다시 만나지 못한다 하여도

 

二人 すばらしい

후타리데미타 스바라시이유메

둘이서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꿈

 

いつまでも いているから

이츠마데모 사이테이루카라

언제나 피어있으니까

 

はまた すよ

보쿠와마타 아루키다스요

나는 다시 걸어가볼게

 

れてまだ れないもあるけれど

키미토하나레테마다 네무레나이히모아루케레도

너와 헤어지고서 아직 잠들지 못하는 날들도 있지만

 

はいつしかざかり

마치와이츠시카하나자카리

거리는 어느덧 꽃이 한창

 

笑顔もまだ 薄紅色まってく

유메모에가오모마다 우스베니이로니소맛테쿠

꿈도 미소도 여전히 연분홍색으로 물들어가

 

にともす灯火して

코코로니토모스토모시비오노코시테

마음에 켜진 등불만을 남기고서

 

二度 えなくても

키미토니도토 아에나쿠테모

너와 두번다시 만나지 못한다 하여도

 

二人 すばらしい

후타리데미타 스바라시이유메

둘이서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꿈

 

いつまでも いているから

이츠마데모 사이테이루카라

언제나 피어있으니까

 

はまた すよ

보쿠와마타 아루키다스요

나는 다시 걸어가볼게

 

 

たとえ二度 えなくても

타토에니도토 아에나쿠테모

설령 두번다시 만나지 못한다 하여도

 

二人 すばらしい

후타리데미타 스바라시이유메

둘이서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꿈

 

いつまでも いているから

이츠마데모 사이테이루카라

언제나 피어있으니까

 

はまた すよ

보쿠와마타 아루키다스요

나는 다시 걸어가볼게

 

-------------------------------------------

 

Posted by M. Salgado
,

ANTHEM – GRIEVE OF HEART

MUSIC 2020. 11. 20. 00:00



라이브 버전

 

ANTHEM GRIEVE OF HEART

 

작사: 시바타 나오토

작곡: 시바타 나오토

 

--------------------------------------------------

 

加速れゆく

카소쿠노마치오나가레유쿠

혼잡한 거리를 흘러가는

 

Drifting grieve of heart

 

おまえは憂鬱にまとい きている

오마에와유우츠오미니마토이 이키테이루

너는 우울을 몸에 걸린 채 살아가고 있어

 

Sail away Sail away

 

孤独にのまれても

코도쿠니노마레테모

고독에 휩쓸려가도

 

Cast away

その

소노코코로와

그 마음은

 

えない明日んでいる

미에나이아시타오욘데이루

보이지 않는 내일을 부르고 있어

 

Grieve of heart

 

不断りゆく

후단노우미오와타리유쿠

끊임없는 바다를 건너가는

 

Drifting grieve of heart

 

おまえは昨日いたまま きている

오마에와키노우오다이타마마 이키테이루

너는 어제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어

 

Sail away Sail away

 

夜明けをちながら

요아케오마치나가라

새벽을 기다리면서

 

Cast away

 

その

소노코코로가

그 마음이

 

れる

스리키레루마에니 토키하나테

닳아 끊어지기 전에 해방하여라

 

Let your eyes stare to the sky

 

しみにけないように

카나시미니마케나이요우니

슬픔에지지 않도록

 

Let your eyes stare to the time

 

はただかにれる

토키와타다시즈카니나가레루

시간은 그저 조용하게 흘러갈뿐

 

Oh grieve of heart

 

 

Sail away Sail away

 

夜明けをちながら

요아케오마치나가라

새벽을 기다리면서

 

Cast away

 

その

소노코코로가

그 마음이

 

れる

스리키레루마에니 토키하나테

닳아 끊어지기 전에 해방하여라

 

Let your eyes stare to the sky

 

太陽はまた

타이요우와마타노보루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Let your eyes stare to the sky

 

しみにけないように

카나시미니마케나이요우니

슬픔에지지 않도록

 

Let your eyes stare to the time

 

はただかにれる

토키와타다시즈카니나가레루

시간은 그저 조용하게 흘러갈뿐

 

Oh grieve of heart

 

Gazing to the sky...

 

--------------------------------------------------

 

보컬 사카모토 에이조

기타 시미즈 아키오

베이스 시바타 나오토

드럼 혼마 히로츠구

 

Posted by M. Salgado
,

EARTHSHAKER - MORE

MUSIC 2020. 11. 19. 23:34


원곡

 

 


키보드 합류 후 재녹음 버전

 

EARTHSHAKER - MORE

 

작사: 니시다 마사후미

작곡: 이시하라 신이치로

 

-----------------------------------------

 

さをみた

히토오니쿠무요와사오미타

사람을 증오하는 나약함을 보았다

 

おどけいのうしろに

오도케와라이노우시로니

익살스러운 웃음의 뒤편에

 

れていた ひとりのGame

와스레테이타 히토리노Game

잊고있던 혼자만의 Game

 

孤独が かよいだす

코도쿠노치가 카요이다스

고독한 피가 솟아오른다

 

Knifeを にぎりしめた

Knife오 니기리시메타

Knife를 쥐었던

 

18々がえる

18노히비가요미가에루

열여덟의 날들이 되살아난다

 

める マニキュアのように

츠메오소메루 마니큐아노요오니

손톱을 물들이는 매니큐어처럼

 

オマエの笑顔も かわってゆき

오마에노에가오모 카왓테유쿠

너의 미소도 변해간다

 

たったひとつのびさえも

타앗타히토츠노요로코비사에모

단 하나 뿐인 기쁨조차도

 

のすきまが してゆく

토키노스키마가 케시테유쿠

시간의 틈새가 지워간다

 

Knifeを にぎりしめた

Knife오 니기리시메타

Knife를 쥐었던

 

18々がえる

쥬하치노히비가요미가에루

열여덟의 날들이 되살아난다

 

もっと! もっと! 孤独

모옷토! 모옷토! 코도쿠요오도레

더욱더! 더욱더! 고독이여 춤춰라

 

もっと やかに

모옷토 아자야카니

더욱더 선명하게

 

もっと! もっと! 孤独

모옷토! 모옷토! 코도쿠요오도레

더욱더! 더욱더! 고독이여 춤춰라

 

もっと やかに

모옷토 아자야카니

더욱더 선명하게

 

 

Knifeを にぎりしめた

Knife오 니기리시메타

Knife를 쥐었던

 

18々がえる

쥬하치노히비가요미가에루

열여덟의 날들이 되살아난다

 

Knifeを にぎりしめた

Knife오 니기리시메타

Knife를 쥐었던

 

18える

쥬하치노호노오가요미가에루

열여덟의 불꽃이 되살아난다

 

もっと! もっと! 孤独

모옷토! 모옷토! 코도쿠요오도레

더욱더! 더욱더! 고독이여 춤춰라

 

もっと やかに

모옷토 아자야카니

더욱더 선명하게

 

もっと! もっと! 孤独

모옷토! 모옷토! 코도쿠요오도레

더욱더! 더욱더! 고독이여 춤춰라

 

もっと やかに

모옷토 아자야카니

더욱더 선명하게

 

もっと! もっと! 孤独

모옷토! 모옷토! 코도쿠요오도레

더욱더! 더욱더! 고독이여 춤춰라

 

もっと やかに

모옷토 아자야카니

더욱더 선명하게

 

もっと! もっと! 孤独

모옷토! 모옷토! 코도쿠요오도레

더욱더! 더욱더! 고독이여 춤춰라

 

もっと やかに

모옷토 아자야카니

더욱더 선명하게

 

-----------------------------------------

보컬 니시다 마사후미

기타 이시하라 신이치로

베이스 카이 타카유키

드럼 쿠도 요시히로

키보드 에가와 토시로

 

Posted by M. Salgado
,

생명보험을 해지하여 자본금으로. 직원 넷이서 창업하다

style.nikkei.com/article/DGXZZO63518230X00C20A9000000?channel=DF180320167079

닛케이 직장인비록 셀렉션 이노우에 슌지편

 

---------

 

시장규모가 커진 애니송’. 그 비즈니스의 주역 중 한사람이 바로 반다이 남코 아츠의 이노우에 슌지 부사장입니다. 1970년대에 록밴드 ‘LAZY’로 시대를 풍미한 바 있습니다. 15회에선 스스로 자금을 대어 음반회사를 설립한 당시를 되돌아 봅니다.

 

오기 부분에 씰을 붙여 발매한 앨범 'I'm in you' 라이너노트의 마지막 페이지

1999. 애니메이션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음반회사를 창업한다.

 

당시엔 주식회사 설립에 자본금 1000만엔이 필요했습니다. 저금만으로는 부족해 생명보험도 해약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회사명에는 매직가든이나 솔리드 복스같은 여러 가지 안이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과거 아사미야 키아 선생님께서 이름 지어주신 란티스로 결정했습니다.

 

곡 제작은 창업멤버로 할수 있었습니다만 문제는 디스트리뷰션(판매)였습니다. 그렇기에 유통망을 가진 판매 파트너를 찾아 유니버설 뮤직 등 대기업을 차례로 돌았습니다. 설립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란티스와 계약을 맺어줄 리 없었고, 모조리 거절당했습니다.

 

방문할 기업이 점점 줄어들어, 마지막은 킹레코드였습니다. 애니메이션 전문 레이블 스타차일드가 있어 무리란걸 알고 있었지만, 연간 매출액 2억엔이라는 사업계획을 믿어주어 계약이 결정되었습니다. 책임자는 시게마츠 히데토시 씨. 80년대 네버랜드의 디렉터로 신세를 졌었는데, 당시 임원으로 승진했었습니다.

 

운도 따랐습니다. 킹레코드에선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프로듀서이기도 했던 실력자 오오츠키 토시미치 씨가 때마침 외부에서 일하셨던 시기. 나중에 오오츠키 씨가 돌아와 이런 얘기는 듣지 못했어!”라며 화내셨다고 합니다. 시게마츠 씨의 승진과 오오츠키 씨의 부재. 이 두 가지가 행운의 포인트였습니다.

 

창업초만 하여도 란티스는 직원 4명인 세계최소 음반사였다.

 

에비스에 위치한 맨션의 방 하나를 얻어 시작을 했습니다. 집세는 월 35만엔 정도. 신용이 없었기에 리스 회사도 의자나 책상을 빌려주진 않았습니다.

 

카펫위엔 집에서 가져온 전화기와 작은 복사기 하나 뿐. 킹레코드 분이 인사를 하러 오시면 몹시 허둥지둥했었습니다. “회사가 붐벼서라고 거짓말을 하곤 근처의 호텔 엑셀런트 에비스의 카페에서 회의를 가졌습니다.

 

란티스의 첫 작품은 고등학생 시절의 친구인 카게야마 히로노부시 씨의 CD.

 

그의 노래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해 저도 몇 곡인가 피아노를 쳤습니다. 어쿠스틱으로 만든 것은 녹음하는 데에 돈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재킷 촬영도 스튜디오 구석에서 끝냈습니다.

 

인쇄소에서 온 라이너 노트(음반에 붙이는 해설지)를 보고 깜짝놀랐습니다. ‘KAGEYAMA H’O’RONOBU“라고 오기. ”진짜야?“ 말문이 막혔습니다. 지금이라면 다시 찍습니다만 당시엔 돈이 없었습니다. ‘HIRONOBU’ 스티커를 만들어서 다같이 한장한장 붙였어요. 4000장정도 붙였을까요? 카게야마 군에게는 미안한 일을 했습니다만 본인은 재밌는 일 하고 있네~“라며 웃어 넘겨줬습니다.

 

(201888)

Posted by M. Salgado
,

“진화한 애니메이션에 어울리는 애니송을- 창업을 결심하다”
style.nikkei.com/article/DGXZZO63278530R00C20A9000000?channel=DF180320167079
닛케이 직장인비록 셀렉션 이노우에 슌지편

---------

시장규모가 커진 ‘애니송’. 그 비즈니스의 주역 중 한사람이 바로 반다이 남코 아츠의 이노우에 슌지 부사장입니다. 1970년대에 록밴드 ‘LAZY’로 시대를 풍미한 바 있습니다. 제14회에선 애니송 음반회사 설립에 대해 밝힙니다.

'기동신세기 건담 X'의 엔딩곡 '휴먼터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녹음되었다

- 1995년, 식스티 뮤직 네트워크가 경영 부진으로.

“이노우에 군도 함께 하자” 식스티가 해산할 무렵, 반다이와 아뮤즈가 공동으로 신설한 음반 회사 에어즈에 권유 받았습니다. 그 밖에도 대형 오퍼들이 왔기에 망설였었습니다. 결정타는 식스티에서 친한 사이였던 경리 담당의 키카와 히토미 씨. 그녀가 에어즈로 입사하기로 정했다는 이야길 듣고 “키카와 씨가 간다면, 나도 가볼까”

- 에어즈는 ‘울트라맨 티가’ 등의 울트라맨 시리즈나 TV 애니메이션 ‘신기동세기 건담 X’의 엔딩곡을 담당헀다.

애니메이션 제작 담당인 선라이즈에서 프로듀서인 우에다 마스오 씨(애니플렉스 전 사장)을 만났습니다. “테마는 사랑. 외국인이 부르도록 합시다. 이노우에 군이 미국에서 녹음해와주세요” 동행한 사장의 지원도 있었기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녹음하기로 정해졌습니다.

‘작사, 작곡, 뮤지션까지 전부 외국인으로 구성해서 본격 서양음악을 만들어주지’ 레이지 시절 에어플레이의 음반을 들은 이래, 어덜트 오리엔티드 락(AOR) 장르를 항상 꿈꿔왔습니다. 키카와 씨한테서 건네받은 현금을 움켜쥔 채 단신으로 미국행. 영어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기에 고생했지만, 이 경험이 약 20년 후에 기적을 일으킵니다.

“반드시 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부탁한 것은 만화 ‘사일런트 뫼비우스’의 TV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과거 이미지 송을 제작한 인연으로 ‘나 밖에 할 수 없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기획제작을 맡은 반다이 비주얼을 방문하여 이미지 송의 실적이나 아사미야 키아 선생님과의 신뢰관계를 주장하여 음악 프로듀서를 맡았습니다.

- 1999년, 에어즈는 사업을 중지한다.

당시에는 아티스트와의 타이업이 급증하여, ‘진정한 애니송’이라 부를만한 작품은 적어지고 있었습니다. 세간에선 애니노래라면 ‘우주전함 야마토’의 사사키 이사오 씨 등의 베테랑 가수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드래곤볼Z’ 주제가를 부른 카게야마 군조차 라이브에선 충분한 관객을 모으지 못했습니다.

TV 애니메이션의 심야방송이 시작되면서, 제작현장에서도 박력과 스피드감 있는 영상표현이 실현되었습니다. 이러한 애니메이션의 진화에 애니송은 따라가지 못하는 인상이었습니다. 애니송 장르가 충분히 스며들지 못한 채, 재능 있는 뮤지션이나 크리에이터가 모이기 어려웠습니다.

‘지금 시대에 맞는 애니송을 만들고 싶다’-. 에어즈 퇴사 후, 애니메이션 음악을 중심으로 한 음반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찬동하고 있던 것은 에어즈의 동료였던 이토 요시유키 씨와 마츠무라 키요코, 그리고 경리 담당의 키카와 씨까지 세 명. 드디어, 란티스의 창업입니다.

(2018년 8월 7일)

Posted by M. Salgado
,

“레이블의 명명자는 아사미아 키아. 애니음악에 열중”

https://style.nikkei.com/article/DGXZZO63008610V20C20A8000000?channel=DF180320167079
닛케이 직장인비록 셀렉션 이노우에 슌지편

---------

시장규모가 커진 ‘애니송’. 그 비즈니스의 주역 중 한사람이 바로 반다이 남코 아츠의 이노우에 슌지 부사장입니다. 1970년대에 록밴드 ‘LAZY’로 시대를 풍미한 바 있습니다. 제13회에선 애니메이션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를 돌아봅니다.

만화 '사일런트 뫼비우스'의 이미지송에서 편곡을 담당했다.

- 네버랜드 활동이 막혀버리면서 음악활동의 전환기가 찾아왔다.

네버랜드가 해체하기 직전해인 1989년. 타케다 테츠야 씨의 라이브에 백밴드로 참가했습니다. 악곡 연주 뿐 아니라 낭독극에선 바람이나 파도소리를 키보드로 표현하는 특수효과 같은 연주도 했었습니다. 공연은 연간 130회 정도. 개런티도 좋았습니다. 게다가 네버랜드의 모두가 타케다 씨의 지방공연을 쫓아가 현지에서 우리들의 라이브 공연도 열 수 있었습니다. 일석이조였지요.

백밴드 일에 불만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공연을 거듭하니 점점 위기감이 커져갔습니다. 타케다 씨에게 의존한 음악활동도 좋은걸까. 타케다 씨가 콘서트를 열지 않으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해원대의 히트곡)‘생각해보니 멀리 온 것이다’를 연주하면서 감상에 젖어 ‘이대론 안되겠어!’라고.

- 1990년에 네버랜드는 해체. 기업 PR영상의 음악이나 이벤트 BGM 작곡 등으로 음악활동을 계속했다.

밤늦게 전화가 울리더니, “지금 스튜디오로 오세요”. 애니메이션 “사이코아머 고바리안”의 일로 알게 된 디렉터였습니다. 달려가니, 후에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주제가 ‘잔혹한 천사의 테제’로 인기를 얻는 타카하시 요코 씨가 있었습니다. 데모 녹음의 피아노 연주자로 곧장 참가했습니다.

이후 “만화 이미지송을 만들어보지 않을래?”. 그 디렉터가 인기만화 ‘사일런트 뫼비우스’의 이미지송 제작을 권유했습니다. 만화 속 장면이나 등장인물을 이미지하여 음악을 만듭니다. 작곡은 욧짱(음악 프로듀서 노무라 요시오 씨). 저는 편곡으로 참가했습니다.

- 사일런트 뫼비우스와의 만남으로 인해, 음악활동의 중심이 사운드 프로듀서로 옮겨간다.

“제가 만들게 해주세요”. 사일런트 뫼비우스에서 이미지송 앨범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작가 아사미야 키아 선생님에게 달려갔습니다. 나라면 좋은 작품을 만들 자신이 있었습니다. 답변은 “좋아”. 이것이 처음으로 프로듀서가 된 순간입니다. 선생님의 “좋아”란 말이 없었으면 스태프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 시기엔 음반사 식스티 뮤직 네트워크의 사무실을 빌린 형태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일런트 뫼비우스의 CD를 발매하기 위해서 새로운 레이블을 세우게 되었습니다만, 딱하니 오는 레이블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사미야 선생님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란티스가 좋겠다”

유래는 그리스의 고전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꿈의 대륙 ‘아틀란티스’. 후에 창업하는 애니메이션 음악을 중심으로 한 음반회사 ‘란티스’의 작명자는, 아사미야 선생님이셨습니다.

(2018년 8월 6일)

Posted by M. Salgado
,

  [From Album <I'm in you.>]

AIRBLANCA

    作詞:影山 ヒロノブ
    작사:카게야마 히로노부

    作曲:田中 宏幸    
          影山 ヒロノブ
    작곡:타나카 히데유키
          카게야마 히로노부

    編曲:須藤 賢一
    편곡:스도우 켄이치

    歌:影山 ヒロノブ
    노래:카게야마 히로노부

------------------------------

心が切なく揺れる  遠い砂の国
코코로가세츠나쿠유레루 토오이스나노쿠니
마음이 애달프게 흔들리는 머나먼 모래의 나라

情熱を  奏でる歌も  あの頃と同じ
죠오네츠오 카나데루우타모 아노코로토오나지
정열을 연주하는 노래도 그 시절과 똑같네

その鳥の名はAIRBLANCA
소노토리노나와AIRBLANCA
그 새의 이름은 AIRBLANCA

過ぎた  時を繋ぐ  銀の翼
스기타 토키오츠나구 긴노츠바사
흘러간 시간을 이어주는 은의 날개

ああ  熱い想いを  今も捨てきれず
아아 아츠이오모이오 이마모스테키레즈
아아 뜨거웠던 추억을 지금도 버리지 못한 채

訪ねる旅さ
타즈네루타비사
여행을 떠나고 있어


通りを  横切る風が
토오리오 요코기루카제가
거리를 가로지르는 바람이

囁いた声に
사사야이타코에니
속삭이길

‘異国の夢は幻’
‘이코쿠노유메와마보로시’
‘이국의 꿈은 환상이야’

でも振り向いてる
데모후리무이테루
그래도 되돌아보고 있는걸

石畳を  駆け下りてく
이시다타미오 카케오리테쿠
돌계단을 달려내려간다

あの日のままの君に  
아노히노마마노키미니
그날 그대로의 널

あえる気がする
아에루키가스루
만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ああ  揺れる面影
아아 유레루오모카게
아아 흔들리는 그 모습

まぶたかすめたら
마부타카스메타라
눈꺼풀을 닫으면

胸の痛みに変わる
무네노이타미니카와루
가슴의 아픔으로 변하네


人は  誰も  心に
히토와 다레모 코코로니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深い  悲しみがある
후카이 카니시미가아루
깊은 슬픔이 있어

そして  僕は  風に吹かれて
소시테 보쿠와 카제니후카레테
그리곤 난 바람에 날려가며

遠い  空を  見つめる
토오이 소라오 미츠메루
머나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어


つかの間二人が温もりを重ねあった
츠카노마후타리가누쿠모리오카사네아앗타
잠시 동안 둘이서 따스함을 나누었던

遠い季節
토오이키세츠
머나먼 계절

ああ  奪い尽くして  何もやれないまま
아아 우바이츠쿠시테 나니모야레나이마마
아아 모든 걸 빼앗고선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채

別れた女性(ひと)さ
와카레타히토사
떠나버린 여인이여


風は  何も  告げずに
카제와 나니모 츠게즈니
바람은 아무것도 고하지않은채

今日も  君を  連れ去る
쿄오모 키미오 츠레사루
오늘도 널 데려가고있어

そして  僕は  彷徨い続ける
소시테 보쿠와 사마요이츠즈케루
그리곤 난 방황을 계속하고있어

白い  砂の  国を
시로이 스나노 쿠니오
하얀 모래의 나라를


人は  誰も  心に
히토와 다레모 코코로니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深い  悲しみがある
후카이 카니시미가아루
깊은 슬픔이 있어

そして  僕は  風に吹かれて
소시테 보쿠와 카제니후카레테
그리곤 난 바람에 날려가며

遠い  空を  見つめる
토오이 소라오 미츠메루
머나먼 하늘을 바라보고있어

------------------------------

보컬: 카게야마 히로노부
키보드: 이노우에 슌지
베이스: 타나카 히데유키
기타: 마츠오 요이치
키보드: 스도우 켄이치
드럼: 이와타 ‘건타’ 야스히코

카게야마 히로노부와 이노우에 슌지, 타나카 히데유키가 조직한 밴드 AIRBLANCA의 곡. 라이브 공연시에만 부르고 녹음이 된 적 없으나 카게야마 히로노부 솔로앨범을 통해 나왔다.

Posted by M. Salgado
,

“사무소에서 독립, 별안간 무급이 되어 밴드해체의 위기”

https://style.nikkei.com/article/DGXZZO62701920X10C20A8000000?channel=DF180320167079
닛케이 직장인비록 셀렉션 이노우에 슌지편

---------

시장규모가 커진 ‘애니송’. 그 비즈니스의 주역 중 한사람이 바로 반다이 남코 아츠의 이노우에 슌지 부사장입니다. 1970년대에 록밴드 ‘LAZY’로 시대를 풍미한 바 있습니다. 제12회에선 새로운 밴드의 해체로 인해 힘든 시기로 내몰렸던 시기를 되돌아 봅니다.

네버랜드 해체 후 결성한 휴먼네이처의 멤버들(오른쪽 끝이 본인)

- 1980년대 중반. LAZY 출신의 타카사키 아키라 씨와 히구치 무네타카 씨가 결성한 LOUDNESS는 미국 뉴욕에서 라이브 공연을 열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한편, 이노우에 씨가 타나카 히데유키 씨와 만든 Neverland는 용두사미로.

온천이나 호텔에서 디너쇼를 열거나 팬미팅을 여는 일이 늘어나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란 상황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무소에서 급료를 받고 있으니까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다’란 결론이 나면서 이시다 신고 씨와 설립했던 I.T.I. 하우스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별안간 무급이 되었습니다. 네버랜드 보컬과 히데유키까지 셋이서 동거를 했습니다. 활동비를 확보하기 위해서 영상특전이 붙은 팬클럽을 만들고, 500개 정도의 비디오테이프 더빙을 나누어서 맡았습니다. 집에 전화를 걸어서 테이프에 녹음한 팬클럽 안내음성을 자동응답기로 틀었습니다. 테이프 재생 스위치가 눌릴 때 나는 ‘딸깍’소리가 계속 울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라이브 공연장에도 직접 전화를 걸어서 부킹했습니다. 여섯 명이 탈 수 있는 차를 구입해, 악기를 싣고 전국각지를 돌아다녔습니다. 라이브 중에는 대기실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회계담당인 드러머는 돈을 넣은 가방을 허리에 찬 채로 연주했습니다. 지방 순회공연이 후반부에 다다르자 가방이 무거워져서 부릉부릉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분배하는 생활이었습니다.

당시, (전 LAZY의)카게야마 히로노부 군이 건축현장에서 일꾼 아르바이트를 하고, 경험도 쌓아 현장의 리더에 올랐었습니다. 네버랜드의 수입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었기에 그에게 부탁해 일꾼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침 다섯시, 카게야마 군이 차로 데리러 와 주었습니다. 키보드를 치는 제 손가락을 배려해, 무거운 물건을 들지 않는 작업장에 배치해 주었습니다. 하루 작업이 끝나면 리더인 카게야마 군으로부터 일당 1만엔이 든 봉투를 받았습니다.

- 결국 네버랜드 해산을 결심한다.

음반사 어디든 사무소에 속해있지 않은 네버랜드와의 계약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계약을 해달라고, 음반사 앞에 숨어서 디렉터를 기다렸습니다. 나오자마자 “이 곡 들어봐주세요”라며 테이프를 건넵니다.

“그렇게 CD를 내고 싶다면 해체하면 되잖냐” 예전에 소속되어 있던 음반사 디렉터가 답했습니다. “해체CD”란 명목이 있다면 발매해 준다는 것입니다. 네버랜드의 이름을 버릴지 말지 멤버들과 미팅은 했지만 앞뒤 따질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예산이 없어서 스튜디오 녹음을 할 수 없었기에 요코하마 비브레에서 해체 라이브 공연을 녹음. 1990년, 최후의 CD를 발매하면서 네버랜드는 해체. 하지만 거의 같은 멤버들로 새로운 밴드를 결성했습니다.

(2018년 8월 3일)

Posted by M. Salgado
,

“아쿠유 가사를 "싫습니다"며 거부, 애니송과의 만남”

https://style.nikkei.com/article/DGXZZO62499040R10C20A8000000?channel=DF180320167079
닛케이 직장인비록 셀렉션 이노우에 슌지편

---------

시장규모가 커진 ‘애니송’. 그 비즈니스의 주역 중 한사람이 바로 반다이 남코 아츠의 이노우에 슌지 부사장입니다. 1970년대에 록밴드 ‘LAZY’로 시대를 풍미한 바 있습니다. 제11회에선 독립 후 처음으로 애니송에 손을 대게 된 경위를 돌아봅니다.

아이돌 시절과는 달리 네버랜드에서는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앞줄 왼쪽이 본인)

- 1981년, 사무소에서 독립하여 전 LAZY의 베이시스트인 타나카 히데유키 씨와 Neverland를 결성하다.

킹레코드의 시게마츠 히데토시 디렉터의 발안으로 아쿠유 씨가 가사를 써 주셨습니다. 완성된 가사는 “우리덜 오사카에서 왔어서예~” 같은. “절대로 싫습니다.”라며 퇴짜를 놓았지만 상대는 대선생님. “어떻게 거절하겠냐!”라며 혼이 났습니다.

당시 히트하던 여성 3인조 그룹 슈가의 프로듀서와 짜보는 아이디어도 나왔었습니다. 그러나 맞추러 온 프로듀서하고 맞지 않아 “이것도 싫습니다.”라며 거절. “그냥 네 맘대로 해라!”라며 내팽개쳐졌습니다.

네버랜드는 스스로 라이브하우스를 찾거나 연습장소를 확보하는 등 마치 밑바닥 시절로 돌아간 활동이었습니다. 라이브 공지 포스터는 멤버들과 렌터카를 타고 붙이러 나갔습니다. 500~600장 정도 붙였습니다. 괴한으로 오인당해 경찰관한테 불려 멈추는 일도 있었습니다.

매일을 음악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보컬은 가입 당시 17세. 아버님으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이노우에 씨와 동거할 것”이라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아내어 참가했습니다. 문외한이었기에 마이크스탠드의 사용법부터 철저히 교육시켰습니다. 카와구치호에 있던 합숙 스튜디오의 오너로부터 “제일 많이 연습한 것은 네버랜드”라는 보증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네버랜드 활동은 즐거웠습니다. 악기를 유지보수하거나, 악곡을 연구하거나. 하고싶은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충실감이 있었습니다. 레이지 시절에는 음악 이외의 일이 많아 스튜디오에 1개월간 틀어박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시간 같은 건 없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레이지에서 버라이어티 방송의 콩트를 극한까지 끌어올려보는 것도 괜찮았을 거란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 1983년, Neverland는 애니송에 처음으로 얽힌다.

“이노우에 군, 애니메이션과 타이업해보지 않을래?” 킹레코드 씨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이쪽은 “하?”였습니다. 킹레코드 안에서도 업무 상대가 애니메이션 관계 부서였기에 항상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분위기도 달랐습니다.

TV 애니메이션 ‘사이코아머 고바리안’의 오프닝곡과 엔딩곡을 담당했습니다. “인트로를 더 화려하게”라던가 “1코러스를 90초에“라는 등의 주문을 받아 ‘리퀘스트가 많아서 귀찮은 업계구나’라고. 이게 첫인상이었습니다. 아직 ‘애니송’이란 단어도 없이 ‘티비 만화 주제가’라고 불렸습니다.

솔직히 어릴 때 TV 애니메이션은 ‘타이거마스크’를 본 정도로, 만화나 애니메이션엔 흥미가 없었습니다. 카게야마 군은 만화를 엄청 좋아해서 LAZY 시절에도 합숙소엔 만화책이 가득했습니다. 고바리안이 인연이 되어 프로레슬링의 입장 테마곡을 작곡하는 일도 맡게 되었습니다.

(2018년 8월 2일)

Posted by M. Salgado
,

“LAZY 해체 후, ‘포키’에서 이노우에가 되다”

https://style.nikkei.com/article/DGXZZO62215290T00C20A8000000?channel=DF180320167079
닛케이 직장인비록 셀렉션 이노우에 슌지편

---------

시장규모가 커진 ‘애니송’. 그 비즈니스의 주역 중 한사람이 바로 반다이 남코 아츠의 이노우에 슌지 부사장입니다. 1970년대에 록밴드 ‘LAZY’로 시대를 풍미한 바 있습니다. 제10회에선 레이지 해체 후에 참여한 새로운 그룹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트라이앵글 프로덕션을 떠나고 새로운 사무소 I.T.I. House를 설립하다.

- 1981년, LAZY 해체 후에도 이노우에 씨는 트라이앵글 프로덕션에 잔류했다.

후지타 코이치 사장은 퀸시 존스가 프로듀싱해 히트했던 ‘아이노코리다(사랑의 코리다)’의 일본어판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거기서 3인조 그룹 트로와 합류해 새로운 유닛인 ‘빅뱅’을 결성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노코리다를 일본어로 부른다는 건 솔직히, 촌스러웠죠. 빅뱅에서의 활동은 그 한곡뿐이 되었습니다.

저와 함께할 보컬을 발굴하기 위해서 후지타 사장과 저는 많은 데모 테이프들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한사람, 빛나는 원석이 있었습니다. “그룹 짜기 전에 함께 생활해봐” 후지타 사장의 제안으로 도쿄 아오야마의 저택에서 1주일 정도 함께 살았습니다. 동갑인 그는 대학생. (닛산의) 빨간 블루버드를 탄 채 “포키(이노우에), 바다에 가자”. 음악에 대한 이야기보다 놀러가자고 하다니.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밤, 롯폰기의 야키토리 가게에 있던 후지타 사장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와는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호소한 바로 다음 순간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주먹으로 크게 맞고 만화 속 한 장면처럼 카운터에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이젠 인내의 한계입니다. “때려치겠어!” 입에서 곧장 튀어나왔습니다.

이후 후지타 사장은 스기야마 키요타카 & 오메가 트라이브를 프로듀스. 유닛 결성을 포기한 대학생 카도마츠 토시키는 이후 싱어송라이터로 대성공했습니다. 분명 저와 짰으면 그리 팔리지 않았겠죠. 제가 사무소를 뛰쳐나온 탓에 서로가 행복해진거라 생각합니다.

- 레이지의 베이시스트 타나카 히데유키 씨와 합류하다.

레이지 해체 후, 히로유키(타나카 히로유키), 탓칸(타카사키 아키라), 그리고 히구치(히구치 무네타카) 씨와 함께 ‘LOUDNESS’에 참가할 예정이었습니다만 음악성의 차이로 탈퇴하고 맙니다. 그래서 알고 지내던 기타리스트나 히구치 씨의 제자였던 드러머를 불러 미국발 ‘어덜트 오리엔티드 록(AOR)’을 지향하는 ‘Neverland’를 결성합니다.

“너희들 같이 할래?”라며 말을 걸어준 사람은 트라이앵글 프로덕션에서 레이지의 라이브 담당이던 이시다 신고 씨였습니다. 후지타 사장에게 맞은 사건이 사무실에 널리 퍼졌기에 배려해준 것이겠죠. 이시다 씨를 사장으로 사무소를 차리게 됩니다. 이름은 ‘이노우에’ ‘타나카’ ‘이시다’의 앞글자를 딴 I.T.I. House입니다.

네버랜드에선 레이지의 영광에 기댈 생각이 없었습니다. 자기소개도 “키보드의 이노우에입니다.” 본명으로 승부했고, 포키란 이름은 쓰지 않았습니다. ‘빨간두건양 조심해’ 같은 레이지 시절의 히트곡도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강한척했어도 레이지의 ‘잔향’으로서 활동했다는 측면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걸 증명하듯이 네버랜드의 활동은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2018년 8월 1일)

Posted by M. Salgad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