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렌 로페테기 스페인 감독 기자회견

26인 소집
7명의 선수가 출장정지 트러블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다비드 비야
그 누구에게도 선발의 문을 닫아놓지 않았으며 모든 선수의 경기력을 고려하고 있다. 필요한 자원이었고 대표팀에 도움이 될 것이다. 태도의 정신력도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에 맞는다. 이미 한번 찾아가서 대화도 나눴었다. 경기력, 감각, 속도, 기동성, 동기부여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도움이 될 것이다. 여느 때의 그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소집하지 않던 시기에도 언제나 우리 후보군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디에고 코스타
어려운 여름을 보냈으며 경기에 뛰지 않고 있기에 소집하지 않았다. 우린 모든 선수에게 개인적인 상황도 고려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려뒀었다. 숨길 거 없이 그는 까다로운 상황에 빠져있다. 걱정이 많이 되며 해결되길 바란다.

마리아노 디아스
좋은 시즌 시작을 끊었고 역시나 고려 대상이었다. 여전히 우리 후보군에 있다.

마르코스 알론소
웸블리에 직접 가서 경기를 지켜봤고 매우 좋은 실력이란 걸 재차 확인했다. 이 경우엔 우리 스타일에 더 잘 맞을 수 있는 선수들이 존재했다. 소집을 배제하진 않는다. 소소한 차이로 소집이 결정된다.

수소
연령별 대표 무대에서부터 잘하는 선수로 유명했고 좋은 성장을 이룩했다. 다른 포지션에 정착했지만 엘리트 수준의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무대에서 매우 잘하고 있으며 그가 이룩한 것들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것이 왜 수소를 소집했느냐는 질문의 답이다. 보여줬기 때문이다. 재능을 보여주고 드리블 실력을 보여주고 축구 실력을 보여줬다. 우리 축구에 잘 섞일 것이다.

메이저리그를 폭격 중인 비야
다른 리그의 수준 문제는 우리가 다룰 수 없는 것이다. 그저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경쟁 수준이란 걸 인식할 뿐이다. 우릴 도울 수 있을 선수기에 소집했을 뿐이다. 다음은 경기력을 보고 직접 판단을 내려야 할 뿐이다.

이탈리아
환상적인 상대와의 아름다운 경기가 될 것이다. 우리팀은 승리말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도 하나의 팀으로 성장 중이다. 멋진 경기를 펼쳐 베르나베우에서 승리를 거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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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훌렌 로페테기

골키퍼
다비드 데 헤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페페 레이나 (나폴리)
케파 아리사발라가 (아틀레틱 빌바오)

수비수
다니엘 카르바할 (레알 마드리드)
세르히오 라모스 (레알 마드리드)
나초 페르난데스 (레알 마드리드)
조르디 알바 (바르셀로나)
세르지 로베르토 (바르셀로나)
제라르 피케 (바르셀로나)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 (첼시)
나초 몬레알 (아스널)

미드필더
이스코 (레알 마드리드)
마르코 아센시오 (레알 마드리드)
세르히오 부스케츠 (바르셀로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바르셀로나)
코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아시에르 이야라멘디 (레알 소시에다드)
치아구 아우칸타라 (바이언 뮌헨)
다비드 실바 (맨체스터 시티)

공격수
알바로 모라타 (레알 마드리드)
비톨로 (세비야)
이아고 아스파스 (셀타 비고)
페드로 로드리게스 (첼시)
디에구 코스타 (첼시)
제라르 데울로페우 (AC 밀란)



※ 세르지 로베르토가 부상으로 제외.

U21 대표에서

예라이 알바레스 (아틀레틱 빌바오)

이냐키 윌리암스 (아틀레틱 빌바오)

엑토르 베예린 (아스널)

알바로 오드리오솔라 (레알 소시에다드)

사울 니게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성인 대표팀 훈련에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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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트리 로스코프는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의 유니폼을 입고 420경기를 뛴 레전드로 출장경기 뿐 아니라 128득점으로 구단 역사상 최다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마지막 시즌은 2012/2013 시즌으로 당시 그가 뛰었던 마지막 경기는 2012년 9월의 원정경기였다.

그러나 올여름 로코모티브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면서 전설의 마지막은 바뀌게 되었다. 구단 측에서 공식적인 은퇴 경기를 마련해 준 것. 로스코프의 이름은 선수 명단에 올랐으며 비어있던 등번호 10번 유니폼도 기쁘게 그를 맞았다.



"로코모티브 구장에서 전설을 보십시오!"



2017년 5월 13일 로코모티브 구장에서 열린 오렌부르크 전에서 로스코프는 과거와 같이 10번이자 주장으로 선발 출전하여 10분을 소화했다. 경기는 4대0 로코모티브의 대승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로코모티브는 전설의 마지막을 홈경기에서 축하해주었다. 한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꿈이 이루어졌다.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경기를 뛴 지 너무나 오래되었으니까. 인생 마지막 경기를 뛸 수 있도록 도와준 회장과 지지해준 팬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이제야 축구화를 벗을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돌아가도록 하겠다.”



그의 로코모티브 소속 통산 출전 경기수는 이제 421 경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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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프랑스와 붙습니다.

골키퍼
다비드 데 헤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페페 레이나 (나폴리)
세르히오 리코 (세비야)

수비수
조르디 알바 (바르셀로나)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 (첼시)
나초 몬레알 (아스널)
나초 페르난데스 (레알 마드리드)
제라르 피케 (바르셀로나)
하비 마르티네스 (바이에른 뮌헨)
세르히오 라모스 (레알 마드리드)
다니 카르바할 (레알 마드리드)

미드필더
안데르 에레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세르히오 부스케츠 (바르셀로나)
아시에르 이야라멘디 (레알 소시에다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바르셀로나)
이스코 (레알 마드리드)
치아구 아우칸타라 (바이에른 뮌헨)
코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다비드 실바 (맨체스터 시티)

공격수
페드로 로드리게스 (첼시)
알바로 모라타 (레알 마드리드)
지에구 코스타 (첼시)
제라르 데울로페우 (AC 밀란)
이아오 아스파스 (셀타 비고)
비톨로 (세비야)



※ 레이나 훈련 중 부상으로 U21 대표 케파 아리사발라가(아틀레틱 빌바오)가 땜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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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군다리가에 위치 중인 라요 바예카노는 이적시장 마지막 날 레알 베티스로부터 우크라이나 공격수 로만 조줄리아를 임대 영입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라리가에서 실패한 공격수의 2부리거행이라는 흔해빠진 이야기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혼란에 빠진 우크라이나의 정세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동서가 분열되었고 크림반도는 러시아에 넘어간 상황입니다. 그런 와중에 우크라이나 군에서 현역 복무를 하였고 우크라이나 군에 대한 응원을 숨기지 않은 조줄리아의 행적이 드러나면서 라요 바예카노 팬들은 많은 불안을 사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선 더 이상 정체를 숨기지 않는 ‘네오 나치’의 일원이 아닐까하는 우려입니다.






조줄리아는 자신이 네오 나치가 아니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라요 바예카노 역시 구단은 파시즘을 옹호하는 구단이 아니며 조줄리아가 나치가 아님을 확인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라요 바예카노의 팬 – 라이스타는 조줄리아의 성향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훈련장에 “바예카스에 나치놈을 위한 장소는 없다! 꺼져라!”라는 내용의 걸개가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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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소속의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가 SNS 질답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하는 스페인 언론 아스의 요약본.

챔스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붙고 싶어?
물론이다. 서로 붙는다는 것은 16강을 통과한다는 좋은 의미 아니겠는가.

축구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0년 파리(라 옥타바)와 2010년 요하네스버그(월드컵 결승).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알프레도 옹

부폰이야 칸이야?
아주 맛탱이간 질문이군! 둘 다 최고의 골키퍼들이라고!

포르투의 현재 상태
전반기를 벤피카에 4점 뒤진 상태에서 마쳤다. 무승부로 승점을 꽤 날렸다. 더 이상 발목 잡혀선 안돼!

스페인이 또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러나 아직 머나먼 길이 남아있다. 이번 세대의 선수들을 기대해보자.

유로 우승과 레알 마드리드 우승 중에서 어떤 게 더 짜릿했는가?
라 옥타바

케일로르 나바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변화가 필요할까?
그는 존중받을 만큼 충분히 잘해왔다. 그도 키코도 최고 수준의 실력을 보이고 있다.

2010년 월드컵 경기 중 어떤 경기가 제일 쫄렸는가?
파라과이 전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8강 전이 제일 힘들었다.

현역에서 은퇴하면 감독에 도전할거야 아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거야?
아마 축구계에 계속 있지 않을까...

2010년 월드컵에서 우승할 때 어떤 기분이었어? 그리고 지난 해 유로에선?
스포츠에선 이길 때도 있으면 질 때도 있다는 법을 깨달아야해. 그리고 이 두 순간을 모두 받아들이는 법도. 모두가 우승을 원하는 법이지..

올리베르 토레스랑은 잘 지내?
멋진 꼬마야. 최고의 자질 지녔어.

무리뉴 or 델 보스케
델 보스케

당신 최고의 순간은?
우주의 기운이 모아져 우승에 성공하고 모두와 기쁨을 나누던 모든 순간

챔스 결승에서 레알 – 포르투는 어떰? 경기장에 서있기도 어렵겠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또... 물론 정말 힘든 순간일거야. 그래도 난...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는 언제까지 볼 수 있어?
내가 축구를 즐길 수 있을 때까지... 딱히 정해놓은 건 아니야.

월드컵을 48 국가가 한다는데?
난 보수라서... 지금이 좋은데 그래도.. 진화라 받아들여야지.


갈수록 날림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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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르 카시야스가 포르투갈 방송국인 포르투 카날과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이별
2015년 1, 2월에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삶이 마지막을 달리고 있단 걸 깨달았다. 분위기가 좋지 못했고 결정을 내려야할 때가 오겠음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팀은 잘하고 있었고 이때야말로 레알 마드리드를 떠날 최고의 시기라 여겼다. 사실 2014년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면서 이별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디에고 로페스의 방출을 택했고 남겨진 난 처음 느껴보는 분위기를 느꼈다.

국가대표
스페인 대표팀과 멀어진 것이 좋게 작용하고 있다. 문제점을 피하거나 물러서고 싶지 않다. 난 포기하고 싶지 않다. 로페테기 감독은 다비드 데 헤아에 걸고 싶다고 말했고 난 동의했다. 하지만 아직 은퇴하진 않았다. 어째서 러시아 월드컵 참가가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데 헤아가 주전이 되기 전까진 내가 주전으로 유로 예선전에 꼬박꼬박 출전했었다.

포르투를 선택한 이유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다. 마드리드에서 너무나도 오래 뛰었었으니까. 거리도 가까웠기에 포르투는 좋은 선택이었다. 나는 챔피언 팀으로 이적하고 싶었다. 첫 시즌에 무관으로 남은 건 내가 원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벤피카를 누르고 챔피언에 오르고 싶다.

은퇴
몸 상태가 성치 않을 때가 내가 떠날 때다. 만약 내가 축구선수를 그만두기로 선택하는 순간이 온다면, 내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될 것이다. 만약 감독이 되고자 한다면 소규모 구단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지만... 미래는 모르는 법이다. 오직 아는 것은 내가 계속 축구와 함께하고 싶다는 것뿐이다. 은퇴 시기는 2, 3년 정도 후로 본다.

몸 상태
좋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먼저 이야기할 것이다. 체력적, 정신적으로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야 내 축구인생도 연장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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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언론 마르카가 고질적인 등 부상으로 고생하다 결국 현역 은퇴를 택한 축구 선수 알바로 도밍게스(27)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27세란 젊은 나이에 택한 은퇴다.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평생 땀흘려오던 무언가와 이별한다는 게 쉽진 않았다. 그러나 지난 2년간 건강이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달았다.

2015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다. 5월부터 등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2월에는 엄청난 진통을 안게 될 정도로 악화일로였다. MRI를 찍었는데 걱정하지 말란 이야기만 들었었다.

구단의 도움이 있었는가?
그렇다. 처음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그제야 내 삶이 망쳐졌다는 걸 깨달았다. 5월, 헤르타 전을 앞두고는 아예 걷을 수조차 없었다.  의사는 날 진정시키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난 그 말을 찰떡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조차 없었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재활훈련을 시작했지만 당시 우린 3위였고 다음 경기에 출전할 것을 지시받았다. 그러나 선발 출전한지 20분 만에 경기가 어떻게 흐르는지 조차 모르게 되었다. 달릴 수도 없었고 점프도 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 이야기하자 의사는 휴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테스트 같은 것도 없었는가?
없었다. 2월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없었다. 휴가를 얻은 지 한달이 지난 후에 마드리드로 가 전문의에게 보였다. 그들은 날 보더니 심각하다고 답했다.

당시 감정은 어땠는가?
글쎄, 놀랐었다. 구단은 내 부상의 심각성에 대해 함구했었으니까.

그 후엔?
진단서를 들고 글라트바흐로 돌아갔다. 구단은 치료를 해줄 테니 프리시즌을 준비하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감독도 내가 그렇게 심각한 상태인 줄 몰랐으니까.

새 시즌을 맞이했다.
그렇다. 시즌은 시작되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따라서 난 팀에 도움이 될 수 없으니 마드리드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마드리드에서 5주간 머무르면서 스스로 재활훈련을 했다... 이후 구단에 복귀하였지만 여전히 제로상태였다.

코칭스태프진이 바뀌면서 그들은 내가 필요한 존재라고 이야기해줬다. 동료들과 훈련한번 해본 적 없지만 상관없다고 했다. 내 부상에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아 갈수록 통증이 심해진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리고 첫 출전 경기가 찾아왔다. 그러면서 팀은 승리하기 시작했지만 난 패배하기 시작했다. 경기 전에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한시간은 움직여야했다. 20분으론 부족했다. 그래야만 아드레날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인생이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가?
단순했다. 일과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곧장 향해 침대를 찾았다. 유일하게 편한 곳은 침대뿐이었다. 잔디 위에서는 프로였지만 무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들과 쇼핑을 하거나 요리를 하곤 했다.

감독은 아무 말 없었나?
그는 부상의 심각성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는 삶이 없었다. 산책도 갈 수 없었고 30분도 앉아있을 수가 없었으니까. 경기 날엔 고통 속에서 일어나 아침부터 세시까지 스트레칭을 해야만 했다.

그 생활이 당신에게 변화를 줬는가?
인생 최악의 시기다. 오만가지 것들을 전부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 나는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선수고 고통 따윈 이겨낼 수 있었다고 여겼었기에 정말 희한한 일이었다. 6팀과 10경기를 뛰어본 후,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구단은 도움을 주지 않았는가?
없었다. 아무것도. 난 명성 있는 의사인 볼파르트 뮐러를 찾았다. 그는 내가 걷는 모습을 보자마자 자기 손을 머리에 올려놓고는 정말로 경기에 뛰었는지 물었다. 나는 악몽 속에서 살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무력한 축구선수로 이야기했다. 그는 내 모습을 보고 곧장 수술실로 가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구단에는 그저 상담만 받으러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상태였다.  때문에 난 스포츠 부장, 감독, 팀닥터, 부회장을 만나야했다.

난 요추 헤르니아를 앓고 있으며 계속 축구를 할 경우 마비가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까지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난 거절했다. 걷지도 못했으니까. 수술을 택했다.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물론이다. 30분도 서있을 수가 없었다. 우울증까지 생겼다. 복잡한 성격이 되면서 무력한 인생을 살게 되었다. 때문에 난 구단에 재충전할 3주를 요청했었다. 그리고 상황은 여전히 나빴고 구단도 해답을 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따라서 난 스스로 배낭을 메고 전유럽을 돌아다니며 전문가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는가?
모르겠다. 하지만 최고의 사람들을 만났고 내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일화를 하나 얘기하자면 유베 팀닥터들을 만났었는데 정말 극진히 대접받았었다. 접골원을 찾아가려고 네덜란드까지 가본적도 있었는데 글라트바흐에 복귀해야만 해서 제대로 말을 나누진 못했었다. 고통은 속에 있었기에 접골사를 마드리드에서 글라트바흐까지 데려오기도 했다. 접골사에게 당신은 내 마지막 희망이니 제발 날 도와달라고까지 말했었다. 구단 의료팀은 앤디 블럼을 제외하곤 최고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그나마 자신이 날 도울 수 없다는 걸 알고 다른 전문가들을 소개시켜주었다.

구단 메디컬 팀의 자존심 문제로 이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가?
많은 것이 얽혀있지만 내게 있어선 무엇보다도 친절함과 인간성의 부족이 우선이다. 심지어 독일법률상 6주 이상 부상으로 빠지면 봉급의 20% 밖에 받을 수 없고 사보험료도 직접 내야만 했다. 그 20%로는 상담료도 전부 낼 수 없었다. 구단 입장에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구단은 치료비의 30%를 충당해줬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내 입장에서 구단은 그저 날 원하는 정도가 거기까지 수준이며 내가 집에서 고통스럽게 죽길 바라도록 내버려 놓는 느낌이었다.

그 외의 치료비 지불은 없었나?
구단에 이야기했었다. 접골원 비용과 비행기 값만 도와달라고, 그 이상은 됐다고. 구단 입장에선 구단에 대한 존중 없이 돈만 내라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결국 구단은 전부 지불해주기로 합의해줬었다. 난 팀의 도움을 주기 위한 건강이 목적이었지만 그들은 6주간의 주급을 절약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게 생소했다. 축구의 다른 면이었다. 따라서 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몇 개월이 흐른 후에도 고통은 계속되었다
그렇다. 따라서 난 두 번째 수술을 고려했다. 독일에서 재활에 대한 조언을 들었지만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을 뜨기는 싫었다. 남은 인생을 계속 이렇게 살기 싫었다. 그래서 일곱 명의 신경외과의에게 상담을 들었고 내 증상과 관련된 저서를 수없이 찾아 읽었다. 그리곤 두 개의 의지(prostheses)를 심는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다시 축구선수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뒤뜰에서라도 축구를 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나는 그저 편히 걷고, 산책을 즐기고 싶을 뿐이었다... 의사들은 고통이 다시 올 수도 있으니 프로 선수는 포기하라고 했다. 나 역시도 보철물 두 개를 심고 축구선수한다는 사람을 본적이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 여전히 일어날 때와 잠들 때 고통이 있긴 하지만 격렬한 수준은 아니다. 지금도 나는 평범한 삶을 찾기 위한 치료 방안을 찾고 있다. 물론, 내가 내 돈으로.

어떻게 은퇴를 결정하게 되었나?
더 이상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 수술실에 들어가 무언가 바뀌길 바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난 내 삶의 질을 되찾고 싶었다. 잘못될 위험을 안고 있었다. 나도 이런 인생을 원하진 않았다. 여전히 고통은 있지만 많이 나아졌다. 이젠 프랑스 의사와 재활 치료를 할 예정이다.

언제 은퇴를 결정했나?
쉽지 않았지만 내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을 때. 축구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누울 곳을 찾아다니지 않고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싶을 뿐이었다.

글라트바흐에선 무어라 했는가?
내가 떠날 때, 진단서와 함께 그만두어야 하겠다고 말했다. 부회장과 스포츠부장을 집으로 불러 모든 걸 설명했다. 그들도 충격을 받았다. 스포츠부장이 말했다. “우리가 생각보다 부상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것 같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가?
누구나 장애를 입을 수 있다. 날 봐줬던 의사 한명 한명 모두 날 감동시켰었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가 용서를 빌지 않았다. 난 모든 걸 밝혀주길 바랬다. 사람이 잘못된 걸 인식한다는 것은 모든 걸 잃기 전에야 깨달을 수 있는 이로운 점이다. 축구계에 있는 모두가 조금 더 신경을 써주길 바란다.

이 모든 걸 왜 이리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내놓는 이유는 무엇인가?
1년을 날리면서 구단에 대한 존중도 사라졌다. 몇 번이나 유혹을 느꼈지만 결국 난 강해져 굴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몰랐다. 모든 게 처음이었으니까. 나는 인간성도 느껴보질 못했다. 누구도 걱정해주질 않았고 의사와의 상담비조차 지급받지 못했으니까. 난 그저 고통 없이 살길 바랄 뿐이며 그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내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 날이 온다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프로축구에 인간성의 부재를 느끼는가?
내 경우는 특별했고 스페인에선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믿는다. 아틀레티코에서라면 이런 상황에서 경기를 뛰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성 없는 세계라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좀 더 신경을 써줘야만 한다. 독일의 그 구단은 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 어디든 그런 식으로 직원을 대해선 안 된다.

글라트바흐를 고소할 생각인가?
독일에서 좋은 변호사를 구했으며 모든 방도를 고려해보고 있다. 재판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태가 없도록 인식의 기회가 되길 바랄 뿐이다. 부디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는 운동선수들이 도움받길 바랄 뿐이다.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그렇다. 많이 생각했다. 그래도 축구계와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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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eros

다비드 데 헤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페페 레이나 (나폴리)

세르히오 아센호 (비야레알)


Defensas

다니 카르바할 (레알 마드리드)

나초 페르난데스 (레알 마드리드)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 (첼시)

마르크 바르트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이니고 마르티네스 (레알 소시에다드)

나초 몬레알 (아스널)

세르히오 에스쿠데로 (세비야)

세르지 로베르토 (바르셀로나)


Centrocampistas

세르히오 부스케츠 (바르셀로나)

코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안데르 에레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후안 마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스코 (레알 마드리드)

치아구 아우칸타라 (바이에른 뮌헨)

다비드 실바 (맨체스터 시티)


Delanteros

알바로 모라타 (레알 마드리드)

루카스 바스케스 (레알 마드리드)

디에구 코스타 (첼시)

비톨로 (세비야)

놀리토 (맨체스터 시티)

호세 카예혼 (나폴리)

아리츠 아두리스 (아슬레틱)



※ 디에구 코스타 부상으로 이아고 아스파스 (셀타 비고) 소집

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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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언론 아스는 앙헬 비야르 스페인 축구협회장이 이번 유로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하차하는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의 후임으로 호아킨 카파로스 감독을 원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카파로스 감독은 최근 말라가, 에스파뇰, 발렌시아의 제의를 거절했다고 하네요. 비야르 회장은 “스페인 국적의 무적인 감독”을 이야기했는데 아스는 카파로스가 이 조건에 부합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유력 후보였던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아틀레틱 빌바오 감독은 어제 계약 연장에 서명하며 국대행을 일축했습니다. 우나이 에메리는 세비야, 파코 헤메스는 라요와 계약 중입니다. 최근 포르투에서 경질당한 훌렌 로페테기 감독의 경우에는 호르헤 페레스 스페인 축구협회 사무총장이 “포르투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라고 발언한 바 있어 수뇌부의 믿을 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그놈의 측근이 전했다고 합니다. 이어 카파로스가 리스트의 최상단에 있다고도 했다네요.

카파로스 감독 역시 대표팀 감독에 긍정적이라고 합니다. 과거 인터뷰에 따르면 “비센테의 뒤를 잇고 싶다. 스페인 국가대표 감독은 큰 영광이다. 내게 있어선 축구 인생 중 최고의 자리가 될 것이다. 난 15년간 프리메라에서 활동하며 최고의 축구를 공부했다. 난 축구인이며 비야르 회장이 제의한다면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답니다.

아스는 카파로스 감독의 스타일에 대해서도 소개했습니다. 과거 인터뷰에 따르면 “선수들의 능력에 따라 자율 시키는 스타일이다. 스페인 선수들이 어찌 축구하는지 알잖은가. 게다가 비센테가 이미 많은 것을 이뤄놓은 상태다. 다음주자는 세대교체를 할 뿐이다. 스타일에 손을 대진 않을 것이다.”라며 숟가락 얹기를 노린답니다. 비야르 회장은 카파로스 감독이 아슬레틱 빌바오 시절에 거뒀던 성공(코파 델 레이 준우승, 유로파리그 진출)에 크게 감명받은 바 있답니다.

비야르 회장은 세대교체를 원하는 건지 유스를 갓 졸업한 선수들을 국대 레벨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감독을 원하나봅니다. 때문에 클럽팀을 지휘할 때 유스 선수들을 적극 기용하던 카파로스 감독을 선호하는 눈치. 그리고 카파로스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이기 때문에 동창인 델 보스케 감독과 친하고 유연한 자리 교체가 될 것이라 기대된답니다.

카파로스 감독은 성질 더러운 것으로 유명하지만 세비야, 데포르티보, 아슬레틱 빌바오 등을 거치며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헤수스 나바스, 디에고 트리스탄, 다니 아우베스 등 많은 유망주들을 성장시킨 감독입니다. 그래도 최고로 키워낸 선수라면 역시 세르히오 라모스라 할 수 있겠습니다. 라모스도 카파로스 감독은 은사로서 잘 따른다고 하네요.
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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