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미로 참가한 ‘레이지’ 실력파로 인기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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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 직장인비록 셀렉션 이노우에 슌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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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규모가 커진 ‘애니송’. 그 비즈니스의 주역 중 한사람이 바로 반다이 남코 아츠의 이노우에 슌지 부사장입니다. 1970년대에 록밴드 ‘LAZY’로 시대를 풍미한 바 있습니다. 제3회에선 카게야마 히로노부 씨의 요청으로 레이지에 참가한 경위를 밝힙니다.

도우미로 가입한 레이지 (1977년 데뷔 당시. 왼쪽에서 두번째가 본인)

- 1976년.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노우에 씨는 카게야마 히로노부 씨의 권유로 밴드 ‘LAZY’에 가입한다.

매일매일, 종일토록 카게야마 군과 놀았습니다. 집이 가까웠기에 함께 돌아가거나, 집에서도 전화로 2시간 정도 수다를 떨거나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서로 잘 맞았어요. 앞바구니에 원통 모양의 항아리 도시락을 실은 채 자전거를 타고 있던 카게야마군의 모습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학교 경음악부는 수준이 높지 않았기에 길게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카게야마군은 4인조 밴드를 조직해 그는 기타 겸 보컬, 저는 드럼을 맡았습니다. 하굣길엔 포크가수 카가와 료 씨의 노래에 등장하는 테즈카야마의 ‘하얀 집’이라는 이름의 작은 찻집에 틀어박혀서 음반을 들었습니다. 음악은 취미로서 프로가 될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음악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 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1학년 여름 쯤, 레이지 멤버들을 데려온 카게야마 군으로부터 “도우미를 해줬으면 해.”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TV에 출연하는 오디션을 받아보고 싶다며. 드럼이 아닌 키보드 역할이었지만 “도우미 역할 뿐이라면.”라면서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레이지는 카게야마 군이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시절부터 소꿉친구로 지내던 타카사키 아키라 씨, 타나카 히로유키 씨와 함께 결성한 마을 밴드였습니다. 그때까진 여자아이가 키보드를 담당했었지만 어째선지 도움을 요청받았습니다. 저와 같은 타이밍에 드럼으로 2살 위인 히구치 무네타카 씨가 가입했습니다. 당시엔 자세한 사정을 몰랐습니다만, 최근에서야 카게야마군의 저서에 “프로를 노리기 위해서 키보드와 드럼 멤버를 교체했다.”라고 쓰여 있어 ‘아, 그 때문이었구나’라며 알게 되었습니다.

- 오사카 현지에서 LAZY는 실력파로 알려져 있었다.

레이지에서 연주할 오르간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어 곤란해 하고 있을 때, 지인이 오사카 니혼바시에서 팔고 있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콤보 오르간’이라는 기종이 중고로 10만엔 정도. 오락실에서 라이브 연주하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았습니다. 리어카 짐칸에 싣고 돌아왔습니다.

레이지는 엄청 뛰어났습니다. 해외 아티스트의 카피도 완벽. 같은 악곡이라도 유럽판이나 해적판 등의 버전도 연주해냈었습니다. 기타인 탓칸은(타카사키 아키라)의 자택에는 테이프를 재생하는 오픈릴이 있었습니다. 그의 집에 모여서 테이프에 녹음되어있는 악곡을 절반 정도의 속도로 재생하여 철저하게 카피했습니다.

딥 퍼플, 레인보우, 유라이어 힙. 브리티시 록의 음반을 닥치는 대로 사서 구석까지 카피했습니다. 딥 퍼플을 연주할 줄 알다니 대단하다는 평판이 퍼져서 단독라이브 때는 유료임에도 수백명 정도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연주를 잘하는 것만을 생각했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이것이 후에 오리지널 곡을 만들지 못해 활동이 정체되는 요인 중 하나가 됩니다.

(닛케이산업신문 2018년 7월 23일)

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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