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8일 레알매니아(realmania.net)에 쓴 글.
플랜 A
먼저 지네딘 지단 감독의 플랜 A는 4-2-3-1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카스티야를 지휘하던 시절에도 보르하 마요랄과 마리아노 디아스 두 공격수를 보유하고도 한명은 왼쪽 측면으로 빼서 윙포워드 역할을 맡기는 4-2-3-1을 썼으니까요. 실제로 부임 초기에는 4-2-3-1 전술을 이용하여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인 선수가 왼쪽 측면으로 빠지고, 왼쪽 윙포워드로 경기를 시작한 호날두가 지공 시에는 중앙에서 공격을 맡는 일종의 변형 4-4-2 전술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 역시도 카스티야에서 엔소 페르난데스를 그러한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기용하면서 쏠쏠한 재미를 봤던 전술입니다. 당시 엔소 페르난데스는 아버지의 이름을 등에 업고 실력이 없는데도 카스티야에 승격했다는 비판을 받았었는데, 지단 감독의 지휘 아래선 주장도 맡으면서 꽤나 했었죠.
당시 지단 감독은 말라가 전 무승부도 있었지만 순조로운 시작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첫 벽에 맞물렸죠. 바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전입니다. 사실 레매의 많은 분들도 예상한 첫 고비였죠. 당시 가레스 베일이 부상 중이었기에 하메스를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두고, 이스코와 크로스, 모드리치가 위치했습니다. 물론 아시듯이 경기는 숨도 못 쉬고 털렸죠. 아틀레티의 버스 두 대를 어떻게든 뚫어보려고 호날두와 벤제마를 전방에 박아 넣고 측면에서 이스코와 하메스의 재능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재미를 못 봤습니다. 특히 크로스가 아틀레티의 전방 압박에 많이 고전하면서 팀의 공격을 이끌어가질 못했고 이로 인한 경기장의 좁아짐을 모드리치가 해결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크로스가 위치하는 3선까지 내려오니까 공격진은 공격진대로 고립되고 하메스와 이스코도 기록상으론 같은 라인이지만 전술적으론 고립되는 상태에 놓였습니다. 크로스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할 경우 압박이 강한 팀을 상대로는 수비진 보호도, 탈압박도 제대로 하질 못한다는 것을 드러낸 경기였죠.
크로스의 아쉬움이 가장 크게 불거진 경기는 아틀레티 전이지만 위험했던 경기가 일주일전에 있긴 했었습니다. 바로 AS 로마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1차전이죠. 스팔레티 로마 감독은 디에고 페로티를 제로톱에 위치시키면서 수비진 바로 앞에 위치한 크로스를 지속적으로 괴롭혔고, 역시나 모드리치가 이를 땜빵 쳐주기 위해 내려오며, 그로인해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이 무뎌지는 결과를 불러왔죠. 이 경기에선 모하메드 살라의 삽질에 더해 호날두가 선제골 득점에 성공하면서 로마의 전술 체계를 무너트려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아틀레티 전 패배 이후 지단 감독은 미드필더 자리에 카세미루를 끼어넣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전술 철학을 깨고 카세미루를 쓰기 시작한 셈인데 사실 사람이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죠. 어쨌든 엘 클라시코에 카세미루가 맹활약하면서 현재까지 이 전술을 주로 쓰고 있습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지단 감독의 플랜 A는 4-4-2로 변형 가능한 4-2-3-1 전술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강팀과의 경기에서 안 먹혔기 때문에 안전빵 4-3-3 전술을 차용한 것이고요. 현재 레알 마드리드는 플랜 B가 주 전술인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지단 감독의 프리시즌 행보를 보면 플랜 A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 봅니다. 비록 떠났지만 헤세를 호날두 롤로 써먹는 4-2-3-1, 마리아노와 모라타 투톱을 이용한 4-4-2, 하메스를 원톱의 파트너로 두는 4-4-1-1(4-4-2의 변형으로 봐도 무방하겠군요)까지 여러 대체 전술을 준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이 전술들이 시즌 중에 전부 나오진 않을 테고, 몇 전술은 부족한 선수층으로 인해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꺼내볼 카드가 있다는 것은 좋은 거죠. 물론 전술 뿐 아니라 선수층도 두터울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25인 풀스쿼드를 바라는 편이고요.
하메스≠이스코
현재 레매에서 가장 큰 주제는 하메스의 활용방안입니다. 사실 주전이 되지 못한 선수들 쉴드칠 때 범하는 일 중 하나가 다른 선수랑 비교해서 타선수를 까 내리면서 자기가 응원하는 선수의 격을 높이는 일인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은 아닙니다. 하메스의 경우에는 최근 카세미루와 이스코가 그런 대상으로서 많이 비교하고 있는데 역할이 다르고 활용용도가 다른 선수들과의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스코
프리 시즌 내내 이스코는 왼쪽 측면과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오가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프리시즌 경기에서 골대를 강타한 중거리 슛이 기억나긴 하지만 그다지 득점에 관여하는 역할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2선에서 움직이면서 공을 소유하고, 지공상황에선 슬슬 중앙으로 위치를 옮기면서 패스로 경기를 풀어가려고 노력하는 일종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았습니다. 특히 루카스 바스케스랑 호흡이 좋더군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체제에서 이스코는 위험지역인 페널티박스 주변까지 공을 몰고 들어오는 동시에 슛을 통해 직접 득점에 가담하곤 했습니다. 드리블 돌파라는 게 워낙 될 때와 안 될 때의 나비효과가 크고, 호날두와 활동반경이 겹치기 때문에 호날두가 맡겨야 할 일을 자기가 뭔데 까분다고 욕을 많이 먹었는데, 지단 감독은 이스코를 위험지역으로 무리한 드리블 돌파를 시키는 것보다 조금 더 안전한 2선 지역에서 공을 소유하면서 전방으로 공을 이어주는 역할을 프리시즌에서 연습시켰고, 본 시즌에도 써먹으리라 봅니다. 여담으로 레매에서 인터뷰 번역을 많이 하면서 느낀 것인데 라리가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드리블러들은 드리블 돌파를 일종의 ‘도전’으로 인식하더군요. 어쨌든 지단 감독은 이스코의 발을 묶는 것보다 활동범위를 바꾸는 교정을 실시했는데 이스코 축구인생의 분기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메스
하메스의 역할은 2선 공격에 임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는 지단 감독이 지난 시즌 베일의 부상 기간 동안에 하메스에게 오른쪽 공격을 맡긴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프리시즌에는 2선에서 빠른 템포로 공을 전방으로 전해주는 동시에 공격진이 만든 공간을 침투하여 직접 득점도 시도하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선 아예 모라타의 옆에 위치하는 2선 공격수로 뛰었습니다. 골이 좀 터졌으면 입지가 불안한 선수 입장에서 좋았을 텐데 중요한 UEFA 슈퍼컵에선 넣지 못하고 접대축구 자리인 트로페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골을 넣은 게 아쉽군요.
지단 감독이 하메스를 2선 공격용 미드필더로 분류한 이상 주전 싸움의 어려움은 지난 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호날두와 베일은 2선 침투에 이은 득점에 도가 튼 선수들이고 둘의 백업 포지션 역시 제1카드는 루카스 바스케스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뒤엔 신성 마르코 아센시오가 기회를 노리고 있지요. 결국 하메스를 활용하려면 4-4-1-1 내지 4-2-3-1 전술을 이용해야하는데 크로스 수미 전술로 크게 피를 봤고, 이를 보완하는 4-3-3 전술이 안정을 찾는 가운데 다른 전술, 그것도 하메스를 중심으로 하는 전술을 사용할 지는 감독 입장에서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카세미루
카세미루는 포르투 시절에는 꽤나 자유가 주어진 선수였습니다. 브라질리언 특유의 발재간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중거리 슛, 장거리 프리킥까지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선 수비진 보호라는 아주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카세미루의 능력이 최고 수준 대회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겠고, 모드리치와 크로스가 있는 이상 카세미루에게 필요 이상의 업무를 주어 위험한 지역에서의 과부하를 막겠다는 뜻일 수도 있겠네요.
케일로르 나바스가 좋은 선방 능력에도 불구하고 패스 잘 못한다고 까이는 판에 카세미루 같은 선수를 두는 더욱 공격적인 축구를 바라는 팬에겐 아쉬운 점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팀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팀을 멱살 잡고 이끌 수 있는 모드리치, 판도를 읽고 흐름을 조절할 줄 아는 크로스, 엄청난 스태미나를 자랑하는 카르바할과 사실상 측면에서의 세밀한 빌드업을 맡고 있는 마르셀루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르셀루의 경우에는 메수트 외질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있을 당시엔 외질, 호날두와의 간결한 패스를 통해 팀의 마지막 패스까지 담당하는 플레이메이커 적인 면모까지 보여줬는데 현재 4-3-3 전술 하에선 패스의 창의성의 많이 줄고 결국 공격수들이 처박혀 있는 곳으로의 단순 크로스를 자주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카세미루를 빼기엔 수미 크로스의 수비력이 불안하다는 점과 솔직히 이제 적지 않은 나이로 하락 밖에 남지 않은 모드리치에게 필요이상의 수비 부담을 지게 할 순 없다는 점이 걸립니다.
1. 크로스가 빠지려면 – 중앙 미드필더로서 가져야할 수비력과 탈압박,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2. 모드리치가 빠지려면 – 모드리치의 공백을 메울 만큼 경기를 만들 줄 아는 능력
3. 카세미루가 빠지려면 – 모드리치와 크로스의 수비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줄 줄 알아야
이런 결론이 나오는데 현재 벤치 자원인 이스코, 하메스, 코바치치 모두 이 역할을 완벽히 대체해주지 못하고 있죠. 결국 지단 감독이 공격축구의 의지를 갖지 않는 한 안정적인 3미들 체제를 버리긴 어려울 것입니다. BBC 트리오를 보유한 레알 마드리드 정도 되는 팀이 지금 체제에서 공격 안 된다고 승리를 못 거둘 팀도 아니고요. 그래도 분명 이스코, 하메스 등을 이용한 전술을 한 두 번은 보여줄 테고 이 선수들은 여기서 스스로의 능력을 보여줘야 반전의 여지의 여지라도 남겨둘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도망
개인적으로 최근엔 레알 마드리드를 한 발짝 물러서서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카시야스를 끝으로 제가 열렬한 팬이었던 시절의 마드리디스타가 다 떠났거든요. 이제 라모스, 마르셀루 정도의 오래된 선수들에게나 어느 정도 애착을 갖고 있는데 어느 정도 온도차가 있고, 레매를 자주 하시는 여러분 입장에서도 최근에 변한 제 온도차를 어느 정도 느끼셨을 겁니다.
플로베르님께서는 이제 이 아저씨가 레알 마드리드 팬인지 포르투 팬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하셨던데 적어도 저는 레알 마드리드의 불행을 바라는 사람은 아닙니다. 레알 마드리드와 레알 마드리드 팬 분들 모두 행복해지세요. 하트를 보냅니다. 하트다 하트♡
Posted by M. Salga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