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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1.02 이노우에 슌지 (17) - '아니사마'의 성공, 팬들의 일체감에 놀라다

“'애니사마'의 성공, 팬들의 강력한 일체감에 놀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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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 직장인비록 셀렉션 이노우에 슌지편

 

시장규모가 커진 애니송’. 그 비즈니스의 주역 중 한사람이 바로 반다이 남코 아츠의 이노우에 슌지 부사장입니다. 1970년대에 록밴드 ‘LAZY’로 시대를 풍미한 바 있습니다. 17회에선 일상계 애니메이션이나 심야 애니메이션이 떠오르던 시기를 회상합니다.

2005년에 시작한 '애니멜로 섬머 라이브'에서 애니송의 열겨를 실감했다

- 2005, 휴대전화용 컨텐츠 송신의 드왕고가 애니송 라이브 이벤트 아니멜로 섬머 라이브(아니사마)를 개최. 프로듀서 오오타 토요키 씨(현재 드왕고 산하 메이지스 사장)는 란티스의 이노우에 씨에게 협력을 청했다.

 

아니사마 개최는 애니송을 둘러싼 분위기가 확하고 바뀐 순간이 아닐까요. 1회는 국립 요요기 경기장의 제1 체육관이 회장이었습니다. 아직 애니송 라이브가 그다지 많지 않던 시기. 정말 관객이 들어올까 걱정도 했습니다만, 오오타 씨는 반드시 요요기에서 성공시킨다라고. 최근의 아니사마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입니다만 당시에는 출연자도 모이지 않아 곤란했었습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관중석은 90% 정도 찼습니다. 요요기 경기장에서의 콘서트 같은건 경험이 없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출연자가 모두 감동해 울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계속 불러온 애니송에 이렇게나 많은 팬이 있냐며. 자기가 해온 일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거죠. 저나 스태프도 울고 있었습니다.

 

아니사마의 성공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건 팬들도 마찬가지 였겠죠. 당시엔 펜라이트가 유행하던 시기였습니다. 8000~9000명이 일제히 펜라이트를 흔드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도 애니송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구나하고 자신감을 가졌을 겁니다.

 

놀라운 점은 모든 노래를 다같이 응원하는 애니송 팬들의 일체감입니다. J-POP 음악 페스티벌에선 응원하는 아티스트가 노래를 마치고나면 관객들이 바뀝니다.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은 일입니다만, 애니송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같이 응원해줍니다. 이것은 애니송만의 독특한, 세계공통의 문화입니다. 애니송의 장르를 더욱 넓어질지도 모른다. 1회의 아니사마에서 5시간 동안 계속 응원해주시는 팬들을 눈앞에 두고, 그렇게 느꼈습니다.

 

- 아이돌그룹의 융성도 애니송에 혜택을 줬다고 한다.

 

2005년은 ’AKB48’이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입니다. AKB48의 노래의 작사는 아키모토 야스시 씨입니다만, 작곡은 곡에 따라서 각각 다른 크리에이터들이 다뤘습니다. ‘모닝구무스메는 작사도 작곡도 모두 츤쿠씨가 다뤘습니다. AKB48의 등장은 크리에이터들에게 새로이 활약할 장소를 제공한 것입니다.

 

AKB48에서 그룹이나 멤버의 특징을 이해하고 작곡에 활용하는 경험을 했던 작곡가가 애니송 업계에서도 활약해주었습니다. 사실 아이돌업계와 애니송업계는 크리에이터를 통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프로작곡가가 맹활약하고 있다는 점에선 레이지의 현역시절과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럭키스타’. 이후 애니송에 이끌려 온 젊고 재능있는 크리에이터들이 많은 히트 애니송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2018810)

 

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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