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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8.29 이노우에 슌지 (13) - 레이블의 명명자는 아사미야 키아

“레이블의 명명자는 아사미아 키아. 애니음악에 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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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 직장인비록 셀렉션 이노우에 슌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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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규모가 커진 ‘애니송’. 그 비즈니스의 주역 중 한사람이 바로 반다이 남코 아츠의 이노우에 슌지 부사장입니다. 1970년대에 록밴드 ‘LAZY’로 시대를 풍미한 바 있습니다. 제13회에선 애니메이션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를 돌아봅니다.

만화 '사일런트 뫼비우스'의 이미지송에서 편곡을 담당했다.

- 네버랜드 활동이 막혀버리면서 음악활동의 전환기가 찾아왔다.

네버랜드가 해체하기 직전해인 1989년. 타케다 테츠야 씨의 라이브에 백밴드로 참가했습니다. 악곡 연주 뿐 아니라 낭독극에선 바람이나 파도소리를 키보드로 표현하는 특수효과 같은 연주도 했었습니다. 공연은 연간 130회 정도. 개런티도 좋았습니다. 게다가 네버랜드의 모두가 타케다 씨의 지방공연을 쫓아가 현지에서 우리들의 라이브 공연도 열 수 있었습니다. 일석이조였지요.

백밴드 일에 불만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공연을 거듭하니 점점 위기감이 커져갔습니다. 타케다 씨에게 의존한 음악활동도 좋은걸까. 타케다 씨가 콘서트를 열지 않으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해원대의 히트곡)‘생각해보니 멀리 온 것이다’를 연주하면서 감상에 젖어 ‘이대론 안되겠어!’라고.

- 1990년에 네버랜드는 해체. 기업 PR영상의 음악이나 이벤트 BGM 작곡 등으로 음악활동을 계속했다.

밤늦게 전화가 울리더니, “지금 스튜디오로 오세요”. 애니메이션 “사이코아머 고바리안”의 일로 알게 된 디렉터였습니다. 달려가니, 후에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주제가 ‘잔혹한 천사의 테제’로 인기를 얻는 타카하시 요코 씨가 있었습니다. 데모 녹음의 피아노 연주자로 곧장 참가했습니다.

이후 “만화 이미지송을 만들어보지 않을래?”. 그 디렉터가 인기만화 ‘사일런트 뫼비우스’의 이미지송 제작을 권유했습니다. 만화 속 장면이나 등장인물을 이미지하여 음악을 만듭니다. 작곡은 욧짱(음악 프로듀서 노무라 요시오 씨). 저는 편곡으로 참가했습니다.

- 사일런트 뫼비우스와의 만남으로 인해, 음악활동의 중심이 사운드 프로듀서로 옮겨간다.

“제가 만들게 해주세요”. 사일런트 뫼비우스에서 이미지송 앨범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작가 아사미야 키아 선생님에게 달려갔습니다. 나라면 좋은 작품을 만들 자신이 있었습니다. 답변은 “좋아”. 이것이 처음으로 프로듀서가 된 순간입니다. 선생님의 “좋아”란 말이 없었으면 스태프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 시기엔 음반사 식스티 뮤직 네트워크의 사무실을 빌린 형태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일런트 뫼비우스의 CD를 발매하기 위해서 새로운 레이블을 세우게 되었습니다만, 딱하니 오는 레이블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사미야 선생님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란티스가 좋겠다”

유래는 그리스의 고전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꿈의 대륙 ‘아틀란티스’. 후에 창업하는 애니메이션 음악을 중심으로 한 음반회사 ‘란티스’의 작명자는, 아사미야 선생님이셨습니다.

(2018년 8월 6일)

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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