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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09 도밍게스: 악몽 속에 살았다


스페인 언론 마르카가 고질적인 등 부상으로 고생하다 결국 현역 은퇴를 택한 축구 선수 알바로 도밍게스(27)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27세란 젊은 나이에 택한 은퇴다.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평생 땀흘려오던 무언가와 이별한다는 게 쉽진 않았다. 그러나 지난 2년간 건강이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달았다.

2015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다. 5월부터 등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2월에는 엄청난 진통을 안게 될 정도로 악화일로였다. MRI를 찍었는데 걱정하지 말란 이야기만 들었었다.

구단의 도움이 있었는가?
그렇다. 처음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그제야 내 삶이 망쳐졌다는 걸 깨달았다. 5월, 헤르타 전을 앞두고는 아예 걷을 수조차 없었다.  의사는 날 진정시키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난 그 말을 찰떡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조차 없었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재활훈련을 시작했지만 당시 우린 3위였고 다음 경기에 출전할 것을 지시받았다. 그러나 선발 출전한지 20분 만에 경기가 어떻게 흐르는지 조차 모르게 되었다. 달릴 수도 없었고 점프도 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 이야기하자 의사는 휴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테스트 같은 것도 없었는가?
없었다. 2월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없었다. 휴가를 얻은 지 한달이 지난 후에 마드리드로 가 전문의에게 보였다. 그들은 날 보더니 심각하다고 답했다.

당시 감정은 어땠는가?
글쎄, 놀랐었다. 구단은 내 부상의 심각성에 대해 함구했었으니까.

그 후엔?
진단서를 들고 글라트바흐로 돌아갔다. 구단은 치료를 해줄 테니 프리시즌을 준비하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감독도 내가 그렇게 심각한 상태인 줄 몰랐으니까.

새 시즌을 맞이했다.
그렇다. 시즌은 시작되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따라서 난 팀에 도움이 될 수 없으니 마드리드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마드리드에서 5주간 머무르면서 스스로 재활훈련을 했다... 이후 구단에 복귀하였지만 여전히 제로상태였다.

코칭스태프진이 바뀌면서 그들은 내가 필요한 존재라고 이야기해줬다. 동료들과 훈련한번 해본 적 없지만 상관없다고 했다. 내 부상에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아 갈수록 통증이 심해진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리고 첫 출전 경기가 찾아왔다. 그러면서 팀은 승리하기 시작했지만 난 패배하기 시작했다. 경기 전에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한시간은 움직여야했다. 20분으론 부족했다. 그래야만 아드레날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인생이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가?
단순했다. 일과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곧장 향해 침대를 찾았다. 유일하게 편한 곳은 침대뿐이었다. 잔디 위에서는 프로였지만 무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들과 쇼핑을 하거나 요리를 하곤 했다.

감독은 아무 말 없었나?
그는 부상의 심각성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는 삶이 없었다. 산책도 갈 수 없었고 30분도 앉아있을 수가 없었으니까. 경기 날엔 고통 속에서 일어나 아침부터 세시까지 스트레칭을 해야만 했다.

그 생활이 당신에게 변화를 줬는가?
인생 최악의 시기다. 오만가지 것들을 전부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 나는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선수고 고통 따윈 이겨낼 수 있었다고 여겼었기에 정말 희한한 일이었다. 6팀과 10경기를 뛰어본 후,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구단은 도움을 주지 않았는가?
없었다. 아무것도. 난 명성 있는 의사인 볼파르트 뮐러를 찾았다. 그는 내가 걷는 모습을 보자마자 자기 손을 머리에 올려놓고는 정말로 경기에 뛰었는지 물었다. 나는 악몽 속에서 살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무력한 축구선수로 이야기했다. 그는 내 모습을 보고 곧장 수술실로 가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구단에는 그저 상담만 받으러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상태였다.  때문에 난 스포츠 부장, 감독, 팀닥터, 부회장을 만나야했다.

난 요추 헤르니아를 앓고 있으며 계속 축구를 할 경우 마비가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까지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난 거절했다. 걷지도 못했으니까. 수술을 택했다.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물론이다. 30분도 서있을 수가 없었다. 우울증까지 생겼다. 복잡한 성격이 되면서 무력한 인생을 살게 되었다. 때문에 난 구단에 재충전할 3주를 요청했었다. 그리고 상황은 여전히 나빴고 구단도 해답을 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따라서 난 스스로 배낭을 메고 전유럽을 돌아다니며 전문가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는가?
모르겠다. 하지만 최고의 사람들을 만났고 내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일화를 하나 얘기하자면 유베 팀닥터들을 만났었는데 정말 극진히 대접받았었다. 접골원을 찾아가려고 네덜란드까지 가본적도 있었는데 글라트바흐에 복귀해야만 해서 제대로 말을 나누진 못했었다. 고통은 속에 있었기에 접골사를 마드리드에서 글라트바흐까지 데려오기도 했다. 접골사에게 당신은 내 마지막 희망이니 제발 날 도와달라고까지 말했었다. 구단 의료팀은 앤디 블럼을 제외하곤 최고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그나마 자신이 날 도울 수 없다는 걸 알고 다른 전문가들을 소개시켜주었다.

구단 메디컬 팀의 자존심 문제로 이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가?
많은 것이 얽혀있지만 내게 있어선 무엇보다도 친절함과 인간성의 부족이 우선이다. 심지어 독일법률상 6주 이상 부상으로 빠지면 봉급의 20% 밖에 받을 수 없고 사보험료도 직접 내야만 했다. 그 20%로는 상담료도 전부 낼 수 없었다. 구단 입장에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구단은 치료비의 30%를 충당해줬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내 입장에서 구단은 그저 날 원하는 정도가 거기까지 수준이며 내가 집에서 고통스럽게 죽길 바라도록 내버려 놓는 느낌이었다.

그 외의 치료비 지불은 없었나?
구단에 이야기했었다. 접골원 비용과 비행기 값만 도와달라고, 그 이상은 됐다고. 구단 입장에선 구단에 대한 존중 없이 돈만 내라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결국 구단은 전부 지불해주기로 합의해줬었다. 난 팀의 도움을 주기 위한 건강이 목적이었지만 그들은 6주간의 주급을 절약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게 생소했다. 축구의 다른 면이었다. 따라서 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몇 개월이 흐른 후에도 고통은 계속되었다
그렇다. 따라서 난 두 번째 수술을 고려했다. 독일에서 재활에 대한 조언을 들었지만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을 뜨기는 싫었다. 남은 인생을 계속 이렇게 살기 싫었다. 그래서 일곱 명의 신경외과의에게 상담을 들었고 내 증상과 관련된 저서를 수없이 찾아 읽었다. 그리곤 두 개의 의지(prostheses)를 심는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다시 축구선수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뒤뜰에서라도 축구를 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나는 그저 편히 걷고, 산책을 즐기고 싶을 뿐이었다... 의사들은 고통이 다시 올 수도 있으니 프로 선수는 포기하라고 했다. 나 역시도 보철물 두 개를 심고 축구선수한다는 사람을 본적이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 여전히 일어날 때와 잠들 때 고통이 있긴 하지만 격렬한 수준은 아니다. 지금도 나는 평범한 삶을 찾기 위한 치료 방안을 찾고 있다. 물론, 내가 내 돈으로.

어떻게 은퇴를 결정하게 되었나?
더 이상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 수술실에 들어가 무언가 바뀌길 바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난 내 삶의 질을 되찾고 싶었다. 잘못될 위험을 안고 있었다. 나도 이런 인생을 원하진 않았다. 여전히 고통은 있지만 많이 나아졌다. 이젠 프랑스 의사와 재활 치료를 할 예정이다.

언제 은퇴를 결정했나?
쉽지 않았지만 내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을 때. 축구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누울 곳을 찾아다니지 않고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싶을 뿐이었다.

글라트바흐에선 무어라 했는가?
내가 떠날 때, 진단서와 함께 그만두어야 하겠다고 말했다. 부회장과 스포츠부장을 집으로 불러 모든 걸 설명했다. 그들도 충격을 받았다. 스포츠부장이 말했다. “우리가 생각보다 부상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것 같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가?
누구나 장애를 입을 수 있다. 날 봐줬던 의사 한명 한명 모두 날 감동시켰었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가 용서를 빌지 않았다. 난 모든 걸 밝혀주길 바랬다. 사람이 잘못된 걸 인식한다는 것은 모든 걸 잃기 전에야 깨달을 수 있는 이로운 점이다. 축구계에 있는 모두가 조금 더 신경을 써주길 바란다.

이 모든 걸 왜 이리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내놓는 이유는 무엇인가?
1년을 날리면서 구단에 대한 존중도 사라졌다. 몇 번이나 유혹을 느꼈지만 결국 난 강해져 굴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몰랐다. 모든 게 처음이었으니까. 나는 인간성도 느껴보질 못했다. 누구도 걱정해주질 않았고 의사와의 상담비조차 지급받지 못했으니까. 난 그저 고통 없이 살길 바랄 뿐이며 그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내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 날이 온다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프로축구에 인간성의 부재를 느끼는가?
내 경우는 특별했고 스페인에선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믿는다. 아틀레티코에서라면 이런 상황에서 경기를 뛰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성 없는 세계라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좀 더 신경을 써줘야만 한다. 독일의 그 구단은 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 어디든 그런 식으로 직원을 대해선 안 된다.

글라트바흐를 고소할 생각인가?
독일에서 좋은 변호사를 구했으며 모든 방도를 고려해보고 있다. 재판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태가 없도록 인식의 기회가 되길 바랄 뿐이다. 부디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는 운동선수들이 도움받길 바랄 뿐이다.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그렇다. 많이 생각했다. 그래도 축구계와 함께하고 싶다.


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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