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DNESS – THE NIGHT BEAST

MUSIC 2023. 11. 2. 01:44

https://youtu.be/KIacv0ybwFg?si=KxAefpnDcnaEeItB

 

LOUDNESS – THE NIGHT BEAST

작사: 니이하라 미노루
작곡: 타카사키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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傷ついた 少年が 一人
키즈츠이타 쇼넨가 히토리
상처입은 소년 홀로

住み慣れた 街捨て
스미나레타 마치스테
정들었던 거리를 버렸네

おびえきった 野良犬のように
오비에키잇타 노라이누노요오니
겁에 질려버린 유기견같이


昔見た 夢は色あせ
무카시미타 유메와이로아세
옛날에 꾸던 꿈은 색이 바래어

荒れ果てた 街に舞う
아레하테타 마치니마우
황폐해져버린 거리에 춤추고 있네

行くあても無く 永遠にさまよう
유쿠아테모나쿠 토와니사마요오
갈 곳을 잃은 채 영원히 해매이겠지

Lonely night Oh 今夜も
Lonely night Oh 콘야모
Lonely night Oh 오늘밤도

ナイフだけ頼りに
나이후다케타요리니
나이프 한자루만을 믿고

He is an outsider 孤独から
He is an outsider 코도쿠카라
He is an outsider 고독 속에서

振り向くな! Bad boy!
후리무쿠나! Bad boy!
돌아보지마라! Bad boy!

He is an outsider 暗闇へ
He is an outsider 쿠라야미에
He is an outsider 어둠 속에서

生き延びろ! Bad boy!
이키노비로! Bad boy!
살아남아라! Bad boy!

The Night Beast! Running Wild
The Night Beast! Running Wild
The Night Beast! Crying Child
The Night Beast! Running Wild

Hey, Bad boy! You must be strong, You've got power


閉ざされた心 凍てつき
토자사레타코코로 이테츠키
닫혀버린 마음은 얼어붙어

危なげな 愛に 戸惑う
아부나게나 아이니 토마도우
위태로운 사랑에 방황하네

飢えた瞳 涙も枯れ
우에타히토미 나미다모카레
굶주린 눈동자 눈물도 말라버렸네

Lonely night Oh 今夜も
Lonely night Oh 콘야모
Lonely night Oh 오늘밤도

ナイフだけ頼りに
나이후다케타요리니
나이프 한자루만을 믿고서

He is an outsider 孤独から
He is an outsider 코도쿠카라
He is an outsider 고독 속에서

振り向くな! Bad boy!
후리무쿠나! Bad boy!
돌아보지마라! Bad boy!

He is an outsider 暗闇へ
He is an outsider 쿠라야미에
He is an outsider 어둠 속에서

生き延びろ! Bad boy!
이키노비로! Bad boy!
살아남아라! Bad boy!

The Night Beast! Running Wild
The Night Beast! Running Wild
The Night Beast! Crying Child
The Night B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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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니이하라 미노루
기타: 타카사키 아키라
베이스: 야마시타 마사요시
드럼: 히구치 무네타카

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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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DNESS - Milky Way

MUSIC 2022. 4. 8. 22:49

https://www.youtube.com/watch?v=xZjGHYZX7ys 

LOUDNESS - Milky Way

작사: 니이하라 미노루
작곡: 타카사키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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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の数は 数えきれぬほどの
호시노카즈와 카조에키레누호도노
별의 수로도 세지 못할 정도인

はかない 人の祈り
하카나이 히토노이노리
덧없는 인간의 기도들

Milky way

見渡す限り 計り知れぬほどの
미와타스카기리 하카리시레누호도노
눈으로 쫓아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

はかない 人の祈り
하카나이 히토노이노리
덧없는 인간의 기도들

Milky way

まるで子供をあやす様に
마루데 코도모오 아야스사마니
마치 아이들을 달래는 듯이

人を みつめ 語りかける
히토오 미츠메 카타리카케루
인간을 바라보며 말을 걸어주네

人は狂い 生命取りのGameを
히토와쿠루이 이노치토리노Game오
인류는 미쳐 생명을 빼앗는 Game을

飽きもせず続けていく
아키모세즈 츠즈케테유쿠
질리지도 않고 계속해간다

Milky way

まるで子供をあやす様に
마루데 코도모오 아야스사마니
마치 아이들을 달래는 듯이

人を みつめ 語りかける
히토오 미츠메 카타리카케루
인간을 바라보며 말을 걸어주네

Milky way・・・


星の数は 数えきれぬほどの
호시노카즈와 카조에키레누호도노
별의 수로도 세지 못할 정도인

はかない 人の祈り
하카나이 히토노이노리
덧없는 인간의 기도들

Milky way

見渡す限り 計り知れぬほどの
미와타스카기리 하카리시레누호도노
눈으로 쫓아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

はかない 人の祈り
하카나이 히토노이노리
덧없는 인간의 기도들

Milky way

Milky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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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니이하라 미노루
기타: 타카사키 아키라
베이스: 야마시타 마사요시
드럼: 히구치 무네타카

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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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DNESS - The End of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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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葉に 出来ない
코토바니 데키나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思いをのせて
오모이오노세테
마음을 담아

この広い 宇宙に
코노히로이 우츄우니
이 넓은 우주에

生きてる 証し
이키테루 아카시
살아있단 증거를

示せよ 魂の求めるままに
시메세요 타마시이노모토메루마마니
드러내라 영혼의 요구대로

時代は めぐって 曼荼羅模様
지다이와 메구웃테 만다라모요오
시대는 돌고돌아 만다라 모양

奇跡を 生み出す
키세키오 우미다스
기적을 낳는

戦慄のエナジー
센리츠노에나지ー
전율의 에너지

遠い 星まで
토오이 호시마데
머나먼 별까지

届けよ この波動
토도케요 코노하도우
닿아라 이 파동

ゆらゆら うごめいて
유라유라 우고메이테
흔들흔들 움직이며


ミスだらけの システム
미스다라케노 시스테무
미스투성이의 시스템을

全部 壊して
젠부 코와시테
전부 부수며

愛と 夢と 希望を
아이토 유메토 키보우오
사랑과 꿈과 희망을

永久に 唱えよう
토와니 토나에요오
영원히 주장하자

示せよ 魂 求めるままに
시메세요 타마시이 모토메루마마니
드러내라 영혼 원하는대로

終わりの無い ロードに
오와리노나이 로ー도니
끝이 없는 road에

身体を 乗せて
카라다오 노세테
몸을 실은 채

奇跡を 生み出す
키세키오 우미다스
기적을 낳는

戦慄のエナジー
센리츠노에나지ー
전율의 에너지

遠い 星まで
토오이 호시마데
머나먼 별까지

届けよ この波動
토도케요 코노하도우
닿아라 이 파동

ゆらゆら うごめいて
유라유라 우고메이테
흔들흔들 움직이며

born again... born again...

ミスだらけの システム
미스다라케노 시스테무
미스투성이의 시스템을

全部 壊して
젠부 코와시테
전부 부수며

愛と 夢と 希望を
아이토 유메토 키보우오
사랑과 꿈과 희망을

永久に 唱えよう
토와니 토나에요오
영원히 노래하자

示せよ 魂 求めるままに
시메세요 타마시이 모토메루마마니
드러내라 영혼 원하는대로

終わりの無い ロードに
오와리노나이 로ー도니
끝이 없는 road에

身体を 乗せて
카라다오 노세테
몸을 실은 채

奇跡を 生み出す
키세키오 우미다스
기적을 낳는

戦慄のエナジー
센리츠노에나지ー
전율의 에너지

遠い 星まで
토오이 호시마데
머나먼 별까지

届けよ このエナジー
토도케요 코노에나지ー
닿아라 이 에너지

奇跡を 生み出す
키세키오 우미다스
기적을 낳는

戦慄のエナジー
센리츠노에나지ー
전율의 에너지

遠い 星まで
토오이 호시마데
머나먼 별까지

届けよ この波動
토도케요 코노하도우
닿아라 이 파동

The end of earth
We born again

The end of earth
We born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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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 니이하라 미노루
기타 - 타카사키 아키라
베이스 - 야마시타 마사요시
드럼 - 히구치 무네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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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DNESS - DIE OF HUNGER

MUSIC 2021. 4. 16. 21:33

 

LOUDNESS - DIE OF HU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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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びただし 飢えた子供の
오비타다시 우에타코도모노
어마어마하게 굶은 아이들의

目が光る
메가히카루
눈이 빛난다

やつれきった 手足はもう
야츠레키잇타 테아시와모오
수척해져버린 손발은 이제

屍と化し
시카바네토카시
송장처럼 되었다

Never ever who's in anger
Never ever die of hunger

See red
Death knell
See red
Die of hunger

See red
Death knell
See red
Die of hunger

誰か 彼らの 安らぐ日々を
다레카 카레라노 야스라구히비오
누가 그들에게 안락한 삶을

与えるだろう
아타에루다로오
가져다줄 것인가

数え切れぬ 枯れた 命を
카조에키레누 카레타 이노치오
셀수조차 없이 말라바런 목숨을

救えるだろう
스쿠에루다로오
구해줄 것인가

Never ever who's in anger
Never ever die of hunger

See red
Death knell
See red
Die of hunger

See red
Death knell
See red
Die of hunger


漂う 海の波間に
타다요우 우미노나미마니
떠도는 바다의 물결사이로

見果てぬ 夢を追い
미하테누 유메오오이
못다 꾼 꿈을 쫓아

追われて 奪われた
오와레테 우바와레타
쫓겨지며 빼앗기고 말았던

罪なき 人の命
츠미나키 히토노이노치
죄없는 사람의 목숨

もうはや 今も 残された
모오하야 이마모 노코사레타
지금도 여전히 남겨진 채

Ah-ah 勇気も 涙も 笑顔も
Ah-ah 유우키모 나미다모 에가오모
Ah-ah 용기도 눈물도 웃음도

失われた
우시나와레타
전부 잃고 말았다

See red
Death knell
See red
Die of hunger

See red
Death knell
See red
Die of hu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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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 니이하라 미노루
기타 - 타카사키 아키라
베이스 - 야마시타 마사요시
드럼 - 히구치 무네타카

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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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의 죽음에 충격 'LAZY'의 동료들을 떠나보내다

style.nikkei.com/article/DGXZZO65172080Z11C20A0000000?channel=DF180320167079

닛케이 직장인비록 셀렉션 이노우에 슌지편

 

시장규모가 커진 애니송’. 그 비즈니스의 주역 중 한 사람이 바로 반다이 남코 아츠의 이노우에 슌지 부사장입니다. 1970년대에 록밴드 ‘LAZY’로 시대를 풍미한 바 있습니다. 21회에선 LAZY 멤버들의 잇따른 죽음을 돌아봅니다.

LAZY는 17년 만에 재결성된다

- 1981LAZY 해산 후, 이노우에 씨와 타나카 히데유키 씨는 네버랜드를 결성했다. 타카사키 아키라 씨와 히구치 무네타카 씨의 LOUDNESS는 일본의 하드록 씬을 견인. 카게야마 히로노부는 애니송 가수가 됐다.

 

1997, TV 방송 울트라맨 다이나의 음악 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LAZY 멤버들은 울트라맨 세대. 재결성해서 엔딩곡을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게야마 군은 바로 흔쾌히 승낙. 히로유키는 당연히 괜찮아했을 테니 넘어가고, 연장자인 히구치 씨를 설득하러 갔습니다. 그가 단골로 드나들던 도쿄 시모키타자와의 선술집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재밌겠다. 하지만 탓칸(타카사키 아키라)이 뭐라고 말할진 모르겠는걸당시 히구치 씨는 라우드니스를 탈퇴하고 탓칸과 거리를 두던 상태였습니다.

 

다음으로 나선 곳은 롯폰기 프린스호텔의 바. 탓칸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히구치는 뭐라던?” 어째선지 반말이었습니다. 떠들썩한 분위기였지만 히구치가 좋다면 좋아” “잘됐다라고 안심하며 히로유키에게 전화했더니 뜻밖에 나는 싫어란 대답. 결국, 처음에는 4명으로 재결성하고 나중에 히로유키가 가세했습니다. 17년 만의 재결성이었습니다.

 

해체 후 계속 만나지 않던 멤버도 있었는데, 다섯 명이 모이고 보니 과거의 레이지가 있었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그 시절의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다니, 학교의 동아리 같아서 신기했습니다.

 

- 20069, 타나카 씨가 급서했다.

 

825일이 그의 생일이라서 축하하자고 모두 함께 이야기하던 참이었습니다. 연락을 준 것은 카게야마 군.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돌연사였습니다.

 

히로유키는 상냥한 사람이었습니다. 레이지 시절부터 합숙소에서 함께 살았고, 후에도 아파트에서 이웃사촌. 가장 돈이 없던 네버랜드 시대에도 함께 살았습니다. 침대에 휴대용 TV를 갖고 와, 보는 것은 언제나 영화 ET. 항상 울어버리니까 ET만 몇 번이나 보는 건데라며 태클을 걸기도 했던 정말로 순수한 남자였습니다.

 

- 2년 후, 히구치 씨가 간세포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등이 아프다라면서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바로 입원. 고베의 큰 병원으로 갔어요. 투병 중에도 호쾌해서 문병하러 가면 신고베역에서 스테이크 도시락을 사줘치료로 머리가 빠지고, 몸이 야위어가도 평소의 쾌활한 히구치 씨였습니다. 침대 옆에는 자동차 잡지. 그때까진 스포츠카 밖에 타질 않았는데, “이제부턴 친환경이다. 퇴원하면 친환경 차량을 살까 생각해긍정적이었습니다.

 

떠나기 두, 세 달전, 둘이서 도쿄에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술도 담배도 끊었지만, 식욕은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조금 더 먹고 싶다라고 하여 세타가야 거리의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가게로. 한 손에 켄터키 치킨이 쥐어진 채 슌지, 고마워!”. 이게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2018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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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 해체 후, ‘포키’에서 이노우에가 되다”

https://style.nikkei.com/article/DGXZZO62215290T00C20A8000000?channel=DF180320167079
닛케이 직장인비록 셀렉션 이노우에 슌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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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규모가 커진 ‘애니송’. 그 비즈니스의 주역 중 한사람이 바로 반다이 남코 아츠의 이노우에 슌지 부사장입니다. 1970년대에 록밴드 ‘LAZY’로 시대를 풍미한 바 있습니다. 제10회에선 레이지 해체 후에 참여한 새로운 그룹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트라이앵글 프로덕션을 떠나고 새로운 사무소 I.T.I. House를 설립하다.

- 1981년, LAZY 해체 후에도 이노우에 씨는 트라이앵글 프로덕션에 잔류했다.

후지타 코이치 사장은 퀸시 존스가 프로듀싱해 히트했던 ‘아이노코리다(사랑의 코리다)’의 일본어판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거기서 3인조 그룹 트로와 합류해 새로운 유닛인 ‘빅뱅’을 결성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노코리다를 일본어로 부른다는 건 솔직히, 촌스러웠죠. 빅뱅에서의 활동은 그 한곡뿐이 되었습니다.

저와 함께할 보컬을 발굴하기 위해서 후지타 사장과 저는 많은 데모 테이프들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한사람, 빛나는 원석이 있었습니다. “그룹 짜기 전에 함께 생활해봐” 후지타 사장의 제안으로 도쿄 아오야마의 저택에서 1주일 정도 함께 살았습니다. 동갑인 그는 대학생. (닛산의) 빨간 블루버드를 탄 채 “포키(이노우에), 바다에 가자”. 음악에 대한 이야기보다 놀러가자고 하다니.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밤, 롯폰기의 야키토리 가게에 있던 후지타 사장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와는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호소한 바로 다음 순간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주먹으로 크게 맞고 만화 속 한 장면처럼 카운터에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이젠 인내의 한계입니다. “때려치겠어!” 입에서 곧장 튀어나왔습니다.

이후 후지타 사장은 스기야마 키요타카 & 오메가 트라이브를 프로듀스. 유닛 결성을 포기한 대학생 카도마츠 토시키는 이후 싱어송라이터로 대성공했습니다. 분명 저와 짰으면 그리 팔리지 않았겠죠. 제가 사무소를 뛰쳐나온 탓에 서로가 행복해진거라 생각합니다.

- 레이지의 베이시스트 타나카 히데유키 씨와 합류하다.

레이지 해체 후, 히로유키(타나카 히로유키), 탓칸(타카사키 아키라), 그리고 히구치(히구치 무네타카) 씨와 함께 ‘LOUDNESS’에 참가할 예정이었습니다만 음악성의 차이로 탈퇴하고 맙니다. 그래서 알고 지내던 기타리스트나 히구치 씨의 제자였던 드러머를 불러 미국발 ‘어덜트 오리엔티드 록(AOR)’을 지향하는 ‘Neverland’를 결성합니다.

“너희들 같이 할래?”라며 말을 걸어준 사람은 트라이앵글 프로덕션에서 레이지의 라이브 담당이던 이시다 신고 씨였습니다. 후지타 사장에게 맞은 사건이 사무실에 널리 퍼졌기에 배려해준 것이겠죠. 이시다 씨를 사장으로 사무소를 차리게 됩니다. 이름은 ‘이노우에’ ‘타나카’ ‘이시다’의 앞글자를 딴 I.T.I. House입니다.

네버랜드에선 레이지의 영광에 기댈 생각이 없었습니다. 자기소개도 “키보드의 이노우에입니다.” 본명으로 승부했고, 포키란 이름은 쓰지 않았습니다. ‘빨간두건양 조심해’ 같은 레이지 시절의 히트곡도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강한척했어도 레이지의 ‘잔향’으로서 활동했다는 측면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걸 증명하듯이 네버랜드의 활동은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2018년 8월 1일)

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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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해체하는 게 어때?“ 사장의 한마디에 흔쾌히 승낙”

https://style.nikkei.com/article/DGXZZO62029510Z20C20A7000000?channel=DF180320167079
닛케이 직장인비록 셀렉션 이노우에 슌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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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규모가 커진 ‘애니송’. 그 비즈니스의 주역 중 한사람이 바로 반다이 남코 아츠의 이노우에 슌지 부사장입니다. 1970년대에 록밴드 ‘LAZY’로 시대를 풍미한 바 있습니다. 제9회에선 레이지가 해체하게 된 경위를 밝힙니다.

1981년 2월 18일에 해체 선언을 하고, 기자회견에 임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노우에 씨)

- 밴드의 인기도 피크가 지나면서 아이돌 노선에 대한 의심이 커졌다.

“너희들, 사실은 어떤 음악이 하고 싶은거야?” 사무소의 소개로 프로듀서 자리에 앉은 사람은, 후에 작가가 되는 이주인 시즈카 씨였습니다. “하드록이 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해보면 되잖아.” 하코네의 록웰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하드록으로의 회귀를 노린 앨범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잡지의 취재에도 “록을 하고 싶다.”라 공언했고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도 피워대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 7월부터의 전국 투어에선 “아이돌 노선은 이제 끝”이란 말과 “헤비메탈 선언.” 최연장자이자 리더인 무네타카 히구치 씨와 사무소의 후지타 코이치 사장이 충돌해 해고 소동도 일어났었습니다. 결국은 “맘대로 해!” 앨범 녹음장에 스태프가 아무도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방치당한겁니다.

- 1980년 12월, LAZY는 앨범 ‘우주선지구호’를 발매. 수록곡의 대부분을 타카사키 아키라 씨부터 각 멤버들이 작곡. 이주인 시즈카 씨도 ‘다테 아유무’ 명의로 작사에 참가했다. 일본 록 팬들이 명반으로 꼽는 한 장이다.

5명이 각자 자신의 음악을 관철하는 경험을 하고보니 멤버 간 방향성의 차이가 확연해졌습니다. 탓칸과 히구치 씨는 한층 더 격렬함을 추구하고 싶어 했습니다. 카게야마 군은 솔로. 저는 ‘어덜트 오리엔티드 록(AOR)’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포스터가 소속해있는 미국 밴드 에어플레이의 음반을 듣고 ‘이거다!’라고 직감했죠. ‘그 때’는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냥, 너희들 해체하는 게 어때?” 1981년 정초에 그런 말을 꺼낸건 후지타 사장이었습니다. 멤버 간 음악성의 차이가 확연히 차이나던 우리도 흔쾌히 승낙. 2월 18일에 예정되어 있던 카게야마 군의 버스데이 라이브를 해체발표일로 정했습니다.

데뷔의 기회를 주신 카마야츠 히로시(무슈 카마야츠) 씨에게 보고해야만 했습니다. 해체발표 전날 밤, 오사카에서 카마야츠 씨를 만났습니다. “우리들, 해체합니다.” 카마야츠 씨는 “으음”이라 신음하며 아무 말도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천천히 입을 열고 “디스코장에 갈까?” 어째선지 디스코장에서 미친 듯이 흔들었습니다.

다음날, 도쿄의 조후시 그린홀에서 LAZY는 해체를 발표했습니다.

해체 라스트 라이브는 5월 31일의 나고야 공연이었습니다. 라스트 라이브의 마지막, 드럼이나 기타의 마구 연주하며 곡을 끝내는 ‘휘젓기’가 좀처럼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들 끝내기 싫어서 20분 정도 계속한 게 아닐까요? 라이브 후에는 다섯이서 밤새 마시고 “다들 건강해.” 그것 뿐이었습니다. LOUDNESS를 결성한 탓칸과 히구치 씨 둘이나, 솔로 활동을 시작한 카게야마 군과는 몇 년간 만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2018년 7월 31일)

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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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미로 참가한 ‘레이지’ 실력파로 인기를 얻다"

https://style.nikkei.com/article/DGXZZO60249180R10C20A6000000?channel=DF180320167079

닛케이 직장인비록 셀렉션 이노우에 슌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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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규모가 커진 ‘애니송’. 그 비즈니스의 주역 중 한사람이 바로 반다이 남코 아츠의 이노우에 슌지 부사장입니다. 1970년대에 록밴드 ‘LAZY’로 시대를 풍미한 바 있습니다. 제3회에선 카게야마 히로노부 씨의 요청으로 레이지에 참가한 경위를 밝힙니다.

도우미로 가입한 레이지 (1977년 데뷔 당시. 왼쪽에서 두번째가 본인)

- 1976년.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노우에 씨는 카게야마 히로노부 씨의 권유로 밴드 ‘LAZY’에 가입한다.

매일매일, 종일토록 카게야마 군과 놀았습니다. 집이 가까웠기에 함께 돌아가거나, 집에서도 전화로 2시간 정도 수다를 떨거나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서로 잘 맞았어요. 앞바구니에 원통 모양의 항아리 도시락을 실은 채 자전거를 타고 있던 카게야마군의 모습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학교 경음악부는 수준이 높지 않았기에 길게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카게야마군은 4인조 밴드를 조직해 그는 기타 겸 보컬, 저는 드럼을 맡았습니다. 하굣길엔 포크가수 카가와 료 씨의 노래에 등장하는 테즈카야마의 ‘하얀 집’이라는 이름의 작은 찻집에 틀어박혀서 음반을 들었습니다. 음악은 취미로서 프로가 될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음악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 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1학년 여름 쯤, 레이지 멤버들을 데려온 카게야마 군으로부터 “도우미를 해줬으면 해.”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TV에 출연하는 오디션을 받아보고 싶다며. 드럼이 아닌 키보드 역할이었지만 “도우미 역할 뿐이라면.”라면서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레이지는 카게야마 군이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시절부터 소꿉친구로 지내던 타카사키 아키라 씨, 타나카 히로유키 씨와 함께 결성한 마을 밴드였습니다. 그때까진 여자아이가 키보드를 담당했었지만 어째선지 도움을 요청받았습니다. 저와 같은 타이밍에 드럼으로 2살 위인 히구치 무네타카 씨가 가입했습니다. 당시엔 자세한 사정을 몰랐습니다만, 최근에서야 카게야마군의 저서에 “프로를 노리기 위해서 키보드와 드럼 멤버를 교체했다.”라고 쓰여 있어 ‘아, 그 때문이었구나’라며 알게 되었습니다.

- 오사카 현지에서 LAZY는 실력파로 알려져 있었다.

레이지에서 연주할 오르간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어 곤란해 하고 있을 때, 지인이 오사카 니혼바시에서 팔고 있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콤보 오르간’이라는 기종이 중고로 10만엔 정도. 오락실에서 라이브 연주하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았습니다. 리어카 짐칸에 싣고 돌아왔습니다.

레이지는 엄청 뛰어났습니다. 해외 아티스트의 카피도 완벽. 같은 악곡이라도 유럽판이나 해적판 등의 버전도 연주해냈었습니다. 기타인 탓칸은(타카사키 아키라)의 자택에는 테이프를 재생하는 오픈릴이 있었습니다. 그의 집에 모여서 테이프에 녹음되어있는 악곡을 절반 정도의 속도로 재생하여 철저하게 카피했습니다.

딥 퍼플, 레인보우, 유라이어 힙. 브리티시 록의 음반을 닥치는 대로 사서 구석까지 카피했습니다. 딥 퍼플을 연주할 줄 알다니 대단하다는 평판이 퍼져서 단독라이브 때는 유료임에도 수백명 정도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연주를 잘하는 것만을 생각했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이것이 후에 오리지널 곡을 만들지 못해 활동이 정체되는 요인 중 하나가 됩니다.

(닛케이산업신문 2018년 7월 23일)

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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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송은 붐을 넘어. 그 주도는 레이지"

https://style.nikkei.com/article/DGXZZO59810050R00C20A6000000

닛케이 직장인비록 셀렉션 이노우에 슌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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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규모가 커진 ‘애니송’. 그 비즈니스의 주역 중 한사람이 바로 반다이 남코 아츠의 이노우에 슌지 부사장입니다. 1970년대에 록밴드 ‘LAZY’로 시대를 풍미한 바 있습니다. 이노우에 씨는 ‘직장인비록’의 제1회에서 스스로의 성장 동력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어린시절 집앞에서

- 1960년 5월 15일, 오사카에서 태어나다.

남부 스미요시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스미요시대사라는 큰 신사 근처로, 정말로 주택뿐인 변두리였습니다. 아버지는 중소기업의 경리부에서 일하는 샐러리맨. 어머니는 뜨개질이 특기로, 어디한테서 부탁을 받아 돈벌이를 하셨습니다. 제 스웨터도 만들어주셨네요. 집에 욕실이 없었기에 가까운 목욕탕에 다녔습니다. 3살 위인 형은 대범한 타입. 둘째인 저는 할머니만 찾는 아이였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정으로, 음악적인 요소는 전혀 없었습니다.

유치원 때는 자동차를 좋아해서 양철 미니카를 갖고 놀았습니다. 주무시고 계신 할머니의 등에 미니카를 달렸어요. 항상 할머니 방에 틀어박혀 느긋하게 살았죠. 이웃 친구들이 현관 앞에서 “슌짱 놀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조모께선 “슌지는 자고 있단다~”라며 멋대로 내쫓아버리시곤 하셨어요.

초등학생이 되면서 활발한 성격이 되었습니다. 집 앞 광장에서 야구를 하곤 했어요. 꽤나 몸집이 큰 아이로, 정렬하면 뒤에서 두 번째. 초등학생 6학년 때 신장이 162센티미터가 되었습니다. 믿지 못할 이야기지만 지금의 신장은 161.5센티미터로 당시의 키가 더 컸어요. 그래서 중학교 야구부에 들어가자마자 기대 받는 대형 루키 취급. 포지션은 투수였습니다.

당시, 매월 2000엔씩 돈을 모금하여 오르간을 사는 것이 근처의 어머님들 사이에서 유행했습니다. 어머니도 적립하고 계셨었습니다. 저는 음악은 완전 꽝으로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도 잘 못했습니다. 통지표에선 다섯 등급 중 2. “얘야, 음악은 2등급이잖니”라며 혼났었습니다. 그때 마침 적립금이 만기가 되어 사게 된 오르간이 음악과의 만남이었습니다.

“피아노도 배우렴.”이라는 말을 들어 근처의 ‘야마구치 피아노교실’에 다녔습니다. 남자아이가 적었기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피아노 교실엔 만화책이 있었기에 일주일에 한번, 만화를 보기위해서 다녔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의 교육방식이 능숙하셨던 거였네요. “슌짱은 제대로 연습했구나”라며 칭찬하고 치켜세워주셨었습니다.

때로는 아버지의 지인께서 집에 오셔서 “슌짱 한곡 연주해줘”라며. 당시에 인기 있던 엔카 등을 외워서 연주하면 “고맙구나!”라며 1000엔도 받았었습니다. 그렇게 TV에서 들리는 곡을 연습해 연주하는 것을 즐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스즈키 신이치씨가 개발한 ‘스즈키 메서드’라는 교육법으로 연습했었습니다. ‘초등과’나 ‘연구과’ 등 여러 단계의 시험이 있었고 과제곡은 클래식 명곡이었습니다. 과제 클리어를 위해 불태웠네요. 중학 1학년까지 계속해 ‘고등과’까진 땄습니다만 ‘연구과’에 들어갈 무렵엔 피아노에서 경음악으로 흥미가 옮겨갔습니다. 음악 성적은 ‘5등급’이 되었네요.

(닛케이산업신문 2018년 7월 19일)


- 이노우에 슌지.
1976년 록밴드 ‘LAZY’ 가입. 1977년 17세의 나이로 프로데뷔. 해체 후에도 음악활동을 계속해 90년대엔 프로듀서로서의 활약이 본격화. 1999년 애니메이션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레코드회사 란티스를 창업. 오사카 출신.

 

アニソンはブームを越えて 仕掛け人は元レイジー|出世ナビ|NIKKEI STYLE

市場規模が膨らんだ「アニメソング(アニソン)」ビジネスの立役者の一人がバンダイナムコアーツの井上俊次副社長です。1970年代にロックバンド「レイジー」で一世を風靡しました。井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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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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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DNESS – LONG DISTANCE LOVE

歌:LOUDNESS
作詞:二井原実
作曲:高崎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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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会いはまるで
데아이와마루데
만남은 마치

Dramaticな 夜のFate
Dramatic나 요루노Fate
Dramatic한 밤의 Fate

熱い風の中
아츠이카제노나카
뜨거운 바람 속

二人は予期せぬ
후타리와요키세누
둘은 예상치 못한

Fantasticな 夢のGate
Fantastic나 유메노Gate
Fantastic한 꿈의 Gate

扉くぐりぬけ
토비라쿠구리누케
문을 빠져나가네

Oh yeah my angela

まるでパラノイア
마루데파라노이아
마치 편집증같이

Oh yeah my angela

逢いたくて Yeah sweet heart
아이타쿠테 Yeah sweet heart
만나고싶어서 Yeah sweet heart

I can’t stop this long distance love baby

夜もねむれない
요루모네무레나이
밤에도 잠들 수 없어

I can’t stop this long distance love baby

君の夢を見る
키미노유메오미루
너의 꿈을 꾸네

淋しくなっても 届かない
사비시쿠낫테모 토도카나이
쓸쓸해도 전할 수 없는 걸

心の涙を いやしておくれ
코코로노나미다오 이야시테오쿠레
마음의 눈물을 치유해주오

I can’t stop this long distance love baby

夜もねむれない
요루모네무레나이
밤에도 잠들 수 없어

I can’t stop this long distance love baby

君の夢を見る
키미노유메오미루
너의 꿈을 꾸네


Oh yeah my angela

まるでパラノイア
마루데파라노이아
마치 편집증같이

Oh yeah my angela

逢いたくて Yeah sweet heart
아이타쿠테 Yeah sweet heart
만나고싶어서 Yeah sweet heart

I can’t stop this long distance love baby

夜もねむれない
요루모네무레나이
밤에도 잠들 수 없어

I can’t stop this long distance love baby

君の夢を見る
키미노유메오미루
너의 꿈을 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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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 니이하라 미노루
기타 – 다카사키 아키라
베이스 – 야마시타 마사요시
드럼 – 히구치 무네타카

 

니이하라 미노루가 롱디하던 시절 만든 곡이라고 한다. ㄷㄷㄷ

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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