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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9 스페인 명단

SOCCER 2017. 9. 29. 22:54



감독: 훌렌 로페테기


골키퍼

케파 아리사발라가 (아틀레틱 빌바오)

다비드 데 헤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페페 레이나 (나폴리)


수비수

조르디 알바 (바르셀로나)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 (첼시)

마르크 바르트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다니 카르바할 (레알 마드리드)

나초 페르난데스 (레알 마드리드)

나초 몬레알 (아스널)

제라르 피케 (바르셀로나)

세르히오 라모스 (레알 마드리드)


미드필더

이스코 (레알 마드리드)

치아구 아우칸타라 (바이언 뮌헨)

세르히오 부스케츠 (바르셀로나)

아시에르 이야라멘디 (레알 소시에다드)

다비드 실바 (맨체스터 시티)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바르셀로나)

사울 니게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코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마르코 아센시오 (레알 마드리드)


공격수

이아고 아스파스 (셀타 비고)

호세 카예혼 (나폴리)

호드리구 모레노 (발렌시아)

알바로 모라타 (첼시)

페드로 로드리게스 (첼시)



※ 다니 카르바할,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알바로 모라타 부상으로 제외


추가 명단

아리츠 아두리스 (아틀레틱 빌바오)

알바로 오드리오솔라 (레알 소시에다드)

호나탄 비에라 (라스 팔마스)

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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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언론 마르카(MARCA)가 최근 은퇴를 선언한 호세 엔리케(31)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아마 축구에 밝은 사람이라면 호세 엔리케가 레반테 칸테라(스페인 축구에서 유스팀을 일컫는 말) 시절부터 “El búfalo(버팔로)”란 별명을 얻으며 왼쪽 측면을 파괴하고 다녔단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모습엔 힘, 넘치는 힘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엔리케 본인도 20세의 자신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완벽하게 활약하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엔리케는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함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정복한 스페인 청년 1세대다. 믿을 수 없게도 뉴캐슬, 리버풀을 거치며 마법과도 같은 활약을 해왔다.

가장 천박하지만 가장 사람들이 꿈꾸는 것. 축구공을 발로 차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동화 말이다.

하지만 축구는 다른 일면도 갖고 있다.
사라짐.
엔리케에게 주어진 시련은 그가 이른 나이에 프로무대에서 은퇴하게 만들었다.

10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일전을 앞 둔 어느 날 버팔로의 오른쪽 무릎은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강인한 자세로 있었지만 무엇이 들이 닥칠 것인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3개월짜리로 생각했던 일이 2년이 걸리고 있었다. 잉글랜드에서 다섯 명의 의사를 만났으나 어느 누구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호세 엔리케는 은퇴를 택했다. 강한 체력이 주무기로 최고의 측면 수비수였던 그는 31세의 축구 인생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엔리케의 축구 인생은 꼬이고 말았다. 그는 이야기를 하면서 수많은 정신과의사와 심리학자를 만났음을 밝혔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전히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제로에서 시작하는 기분은 든다.” 모자를 벗으면서 그는 함께하고 있는 영국인 여자친구를 향해 웃음 지었다.

“약물 없인 출전도 힘들었다. 훈련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정말 힘들었고 절망스러웠다. 극심한 약물 처방으로 인해 훈련 중에 어지럼증이 일어난 적도 있을 정도였다. 경기든 뭐든 몸을 움직이고 난 후엔 무릎이 공처럼 부어올랐고 3일은 꼼짝달싹도 못했다.” 의사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함에 따라 엔리케는 모든 문제란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믿게 되었다고 한다.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매번 의사들은 심리적인 문제라고 이야기했고 나도 굳게 믿기 시작했다.”

큰맘을 먹어본 적도 있다. 안필드에서의 크리스털 팰리스 전. 엔리케는 일주일 동안 약물 치료를 받지 않았다. 그 날도 그랬다. “브랜던(당시 리버풀 감독 브랜던 로저스)이 날 불렀고 우리는 한번 상황을 보기로 했고 나도 동의했다.”

“약물 없이 15분을 뛰자 몸이 할 수 있는 건 직진뿐이었다. 몸을 비틀 수가 없었다.”



“이후 스페인 의사에게 내 몸을 보였다. 여러 다른 의사들을 찾는 게 바람직한 건 아니란 걸 알지만 당시 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수술을 받았지만 엔리케의 몸이 예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다신 없었다.

“과거로 다신 돌아갈 순 없어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반월상연골이 파열되고 3개월 동안이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후 스페인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나는 축구선수로서 경쟁력을 잃었고 정말 끔찍한 세월들이었다. 나는 출전에 대한 열망이 원동력인 사람이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부상을 당하고 나니 축구의 안 좋은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게 너무나도 바뀌고 말았다. 불안감으로 인해 훈련이 두려워졌고 즐길 수가 없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한건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엔리케의 리버풀에서의 마지막은 위르겐 클롭 감독이었다. 클롭과의 마지막은 끔찍했다고 한다. “내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 클롭 감독이랑 잘 지냈고 매사에 진지하게 임했다. 그러나 그는 날 기용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1군과 함께 훈련했지만 경기는 유스와 뛰었다. 의문이 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여기서 스무 살짜리들이랑 뭐하는 거지?” 끔찍한 한해였으나 당근이 없던 건 아니었다. “작별의 시간에 클롭은 내게 리버풀의 주장완장을 맡겼다. 그저 영광이고 항상 고마워할 것이다.”

이후 스페인 복귀를 택했고 레알 사라고사와 2년 계약을 맺었다. 역시 잘 풀리진 않았다. “프리시즌에 무릎이 엄청나게 부어오르기에 경기를 못 뛰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을 짜내고 짜내 거의 서른 경기나 뛸 수 있었다. 대부분이 중앙 수비수였다.” 시즌이 끝나고 그는 수뇌부와 합의 후 악수로 이별을 택했다.

“할 만큼 했다. 나는 45년이든 50년이든 더 걷고 싶다. 나는 불구가 아닌, 스스로 걸을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는 이 이야기와 함께 상호해지에 합의했다.

호세 엔리케는 떠났다. 그러나 축구를 포기할 순 없었다. 페데리코 파시오, 페데 카르타비아의 에이전트인 형제 살바의 옆에서 새 인생을 시작한다. 축구계 인맥도 많고 본인도 원했던 일이었다.

자신의 말을 끝마친 버팔로는 스스로 잔디밭을 떠나며 동화를 끝맺음 지었다.
다음 이야기의 무대는 사무실이다. 행운을 빈다.
Posted by M. Sa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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